절함도(折檻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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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성제(成帝)와 충신 주운(朱雲)의 고사를 그린 역사고사도.

내용 및 특징

‘절함(折檻)’은 난간을 부러뜨린다는 뜻이다. 한나라 때 충신 주운이 성제가 총애하는 간신 장우(張禹)의 잘못을 지적하며 난간을 붙잡고 직언하다 끌려 나가지 않으려고 꽉 붙잡은 난간이 부러진 고사로 인해서, ‘절함’은 직간하는 신하가 보여준 충성의 상징이 되었다.

이 일화를 그린 절함도(折檻圖)에 대한 기사가 조선시대 기록에도 나타난다. 효종 때 연행을 다녀온 이행(李荇)이 절함도를 진상하였고, 이후 절함도는 왕들의 감상의 대상이 되며 중요시되었다. 숙종은 궁중에 수장된 절함도를 감상하고 평을 남겼는데, “1폭 안에 그려진 성제의 안색이 사납고, 주운의 강개한 모습이 잘 형용되어 비록 묘필이라 할지라도 또한 지나치지 아니하다.”고 하여 그림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영조는 숙종이 지은 절함도의 찬(贊)을 흠송해왔었다고 전하고 있으며(『영조실록』 5년 윤7월 4일), 『홍재전서』에서도 절함도에 제한 정조의 시를 볼 수 있다. 즉, “상방검을 빌리어라 철석 간장 굳은 절개여/난간 부러뜨린 높은 충성 정히 늠름하여라/모든 후인들은 두려운 줄을 알지어다/그 유적이 천추에 그림으로 전해진다오[尙方劒借鐵腸堅 折檻危忠正凜然 凡百後人知所懼 千秋遺跡畫圖傳].”라고 하여 충신 주운의 교훈적 일화를 힘주어 강조하였다.

참고문헌

  • 『열성어제(列聖御製)』
  • 『홍재전서(弘齋全書)』
  • 김영욱, 「역대 군신 사적을 그린 조선시대 왕실 감계화」,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발표문,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