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성사(彰聖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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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88개 자복사 가운데 하나로, 경기도 수원시광교산에 있었던 절.

개설

창성사(彰聖寺)는 창건 연대는 전하지 않고 고려말에 흥성한 절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진각(眞覺) 국사(國師) 천희(千熙)가 주석하다 입적한 절이다. 조선 태종 때 자은종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지정된 지방의 명찰(名刹)이었지만 이후의 상황은 알 수 없다. 창성사지(彰聖寺址)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 산41번지에 있고, 2000년 수원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및 변천

(1) 창건

창성사의 창건주, 창건 시기는 전하지 않는다. 고려 공민왕 때 진각(眞覺) 국사(國師) 천희(千熙)가 주석하다 입적한 절로 알려져, 이 시기에 흥성한 절로 추정하고 있다.

(2) 조선시대

1407년(태종 7) 12월, 수원 창성사가 자은종의 자복사찰로 지정되었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당시 조선시대의 불교 종파는 이전 11개(혹은 12개)에서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중신종(中神宗), 총남종(摠南宗), 시흥종(始興宗) 등 7개 종파로 정리되었는데, 창성사는 자은종에 소속된 자복사찰이었다. 자복사찰은 나라의 안녕과 고을의 복을 빌기 위해 지정한 사찰로, 당시 창성사가 수원 지역을 대표하는 명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8세기 영조대에 편찬된 『가람고(伽藍考)』에도 이름이 보이고 있어서 18세까지는 존재한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현대

현재는 절터 위치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1986년 광교산 절터 약수터를 창성사지로 설정하고 수원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2000년에 주민들의 증언과 현장 조사 결과를 토대로 경기도 수원시 상광교동 산41번지를 창성사지(수원시 향토유적 제4호)로 위치를 변경했다. 창성사지에는 건물은 없지만 축대와 건물 기단, 우물터가 남아 있다. 2013년에 들어와 창성사지는 현재의 위치가 아니라 광교산 등산로 입구의 법성사(法性寺) 일대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문화재

창성사 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彰聖寺 眞覺國師大覺圓照塔碑, 보물 제14호)는 창성사에서 입적한 진각 국사 천희(千熙)의 행적을 기린 탑비이다. 1386년(고려 우왕 12) 광교산 창성사 경내에 건립하였다. 비문은 이색이 짓고 혜잠이 글씨를 썼다. 1965년 관리상의 이유로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에 옮겨서 보존하고 있다.

참고문헌

  • 『가람고(伽藍考)』
  • 엄기표, 「水原 彰聖寺의 沿革과 眞覺國師 千熙의 史蹟」, 『문화사학』39, 2013.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