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두(乳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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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스름하게 지표면 위로 솟은 혈장(穴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

개설

풍수지리에서는 생기가 마지막 혈장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할 때 사람 혹은 생물에 비유한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그것은 물형론에서의 다양한 명칭에서도 확인된다. 태조산(太祖山)이나 중조산(中祖山)과 같이 인사와 관련된 용어는 물론 맥이라든지 사신사의 명칭 등은 모두 생기가 충만함을 증거하는 산수의 외형적 표식에 대한 일종의 암시적 표현이다. 유두도 유혈에서 생기가 충만함을 증명하는 의인화된 용어라 할 수 있다. 유두는 혈처(穴處)라고도 한다.

내용 및 특징

참된 혈은 모종의 표식이 있는데, 혈속에 내재된 생기와 관련이 깊다. 생기가 충만한 증거로서 흔히 사람의 가슴처럼 둥그스름하게 부푼 형상을 길격으로 판단한다. 그것은 단순히 외형적으로 솟아올라서가 아니라 현무정을 타고 내려 온 생기가 입수를 거쳐 혈장 속으로 들어가면 그 생기로 인해 땅은 흔히 부풀어 오르게 된다.

조선시대에 정조는 영우원(永祐園)의 능묘를 수원으로 천장하기 위해 융릉(隆陵)이 조성되어 있는 곳을 매우 길한 자리로 판단하고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였다. 정조는 수원 지역을 수년에 걸쳐 자세히 살핀 후에 용과 혈, 그리고 지질과 물이 더없이 좋다고 보고, 그곳이 복록을 가져다줄 수 있는 대지라고 하였다. 또 그 형국에 대해 설명하기를, 일반 사람들도 쉽게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두드러진 길지라 하였고, 유두 아래 쪽 평탄한 곳에 재혈하고 마주 보이는 작은 언덕을 안산으로 삼아 좌향의 기준으로 삼으면 이른바 신명이 묵묵히 도와준 결과로 찾게 된 천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길지 중의 길지라고 판단한 후, 드디어 영우원에 묻힌 생부 사도세자를 수원의 융릉으로 천장하기로 하였다(『정조실록』 13년 7월 11일)(『정조실록』 13년 7월 13일). 여기에서 정조는 길지의 형국을 갖춘 장소의 핵심 되는 곳이 유두이니, 바로 그 밑에 재혈하고 앞의 안산을 바라보는 향법으로 광중을 놓겠다는 생각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유두는 길지로 판명되는 장소에서 지표면 아래의 생기가 모인 곳을 혈이라 한다면, 지표면 위의 붕긋한 곳의 중앙을 그 표식으로 삼고 있다.

참고문헌

  • 김두규, 『조선 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궁리출판사, 2000.
  • 장성규·김혜정, 『완역 풍수경전』, 문예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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