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책(遵守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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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전의 방법과 양전을 위한 기준척의 크기를 제시한 문서.

개설

준수책이 언제 처음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인조실록』에 처음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인조실록』 12년 10월 29일) 적어도 인조대 이전에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1653년(효종 4)에 만들어진 『전제상정소준수조획(田制詳定所遵守條劃)』이 전해진다. 효종대 이후 등장하는 준수책은 이 『전제상정소준수조획』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효종대 『전제상정소준수조획』에 제시된 양전 방식은 공법(貢法)에 의거하였으며, 다만 토지 등급별로 다른 자를 사용하지 않고 하나의 기준척을 사용하여 측정한 후 등급별 자의 넓이로 환산한 것이 조선전기와 다른 점이었다.

내용 및 특징

인조대 참고한 준수책의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1653년(효종 4)에 만들어진 『전제상정소준수조획』이 현존하므로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전제상정소준수조획』은 세종대 토지 등급을 6등급으로, 해마다의 작황을 9등급으로 나누게 된 경위를 『세종실록』 기사를 바탕으로 정리하고, 실제 양전 방법에 대한 조항들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서술 끝에 1653년(효종 4) 개간(開刊)하였다고 덧붙였다.

『전제상정소준수조획』의 내용에서 주목되는 것은, 토지 등급을 6등급으로 나누고 그에 따라 다른 자를 사용하여 측량했던 조선전기의 양전 방식과는 달리, 1등급 자를 기준으로 모든 토지를 측량한 이후에 해당 토지 등급의 자로 환산하여 넓이를 계산하였다는 점이다. 이 양전 방식은 이후 『속대전』에도 포함되어, 조선후기 내내 표준으로 적용되었다.

최근에는 『전제상정소준수조획』의 마련이 1653년(효종 4)이 아니라 세종대 공법 성립 이후 『경국대전』 편찬 이전인 1443년~1475년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즉, 세종대 만들어진 준수책이 효종대 다시 간행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공법 도입 이후부터 『경국대전』 반포까지는 6등급의 자가 모두 사용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효종대 편찬으로 보는 기존 견해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변천

효종대 이후에도 조선에서는 몇 차례 양전이 이루어졌다. 이때에는 『전제상정소준수조획』을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보이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통해서도 이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마지막 양전인 숙종대 경자양전(『숙종실록』 44년 10월 10일)과 순조대 경상도 양전(『순조실록』 20년 3월 27일)도 준수책에 의거하여 이루어졌다.

참고문헌

  • 『속대전(續大典)』
  • 『목민심서(牧民心書)』
  • 이영훈, 「『전제상정소준수조획』의 제정연도」, 『고문서연구』 9-1, 한국고문서학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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