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朝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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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끼니로 먹는 밥.

개설

궁중에서의 평상시 일상식은 이른 아침의 초조반(初早飯)과 조반(朝飯)·석반(夕飯) 2번의 수라상[水剌床] 그리고 점심 때 차리는 낮것상과 밤중에 내는 야참[夜食]까지 5번의 식사를 올린다. 왕이나 왕비의 조반은 조수라라 하고, 그 이하 왕족과 신하들이 먹는 아침밥은 조반이라 한다.

내용 및 특징

조반 중에 날이 샐 무렵인 새벽에 일찍 먹는 아침밥을 새벽조반 또는 초조반이라 하고, 오전 10시경에 먹는 아침밥은 조반이라 한다. ‘조반하다’란 동사는 ‘아침밥을 짓다’와 ‘아침밥을 먹다’라는 2가지 뜻이 있다. 조선시대와 근세에도 세 끼니 중에 조반을 가장 중하게 여기어 어른들 생신날에는 친척이나 지인을 아침에 초대하였다.

변천

『조선왕조실록』에 일상적인 조반을 드셨다는 기사는 많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왕실의 관리들에게 주는 공궤(供饋) 중 조반을 줄이는 것을 건의하였다. 1434년 (세종 16) 호조(戶曹)에서 흉년으로 인한 지출의 삭감 조목을 아뢸 때 육조와 대간(大諫)에게 상참(常參) 뒤에 조반을 주는데, 한갓 국고를 소비할 뿐이니 사헌부(司憲府)의 대장 이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덜어 없앨 것을 건의하였다(『세종실록』 16년 12월 12일).

중국에서 온 사신에게 매일 아침에 재상과 승지를 보내어 문안하는 것을 전례로 삼았다. 1470년(성종 1) 고령부원군 신숙주(申叔舟)와 도승지(都承旨)이극증(李克增)이 중국 사신에게 문안하고 신수(晨羞), 즉 조반을 같이 하였다. 이로부터 매일 이른 아침에 재상과 승지를 보내어 문안하는 것이 예(例)가 되었다(『성종실록』 1년 5월 2일). 1480년(성종 11)에는 상당부원군한명회(韓明澮)와 도승지김승경(金升卿)이 중국 사신에게 문안하고 조반을 함께 하였다. 이로부터 매일 아침에 재상과 승지를 보내어 문안하는 것이 전례가 되었다(『성종실록』11년 5월 2일).

참고문헌

  • 김명길, 『낙선재 주변』, 중앙일보·동양방송,1977.
  •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일지사, 1987.
  • 방신영, 『조선요리제법』, 한흥서림, 1930.
  • 한복진, 『조선시대 궁중의 식생활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 황혜성 외, 『李朝宮廷料理通攷』, 학총사, 1957.
  • 황혜성 외, 「궁중의 식생활」, 『한국음식대관』6권,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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