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수사찰(折受寺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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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왕실의 친인척들이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원당으로 지정한 사찰.

개설

절수(折受)는 ‘남의 전토(田土)를 차지한다’는 뜻으로, 토지나 어전(漁箭), 염분(鹽盆), 시장(柴場)에 대한 국가의 수조권을 왕실의 친인척이 갖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절수사찰(折受寺刹)은 왕친들이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사사로이 원당(願堂)으로 지정한 사찰을 가리킨다.

16세기 중반 직전법 붕괴 이후 대부분의 궁방(宮房)은 극심한 재정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에 따라 새로운 재정 확보책의 일환으로 토지와 어전에 대한 절수를 감행하게 되었다. 또한 궁방에서는 사찰들을 원당으로 지정해 능묘에 소요되는 노동력과 잡다한 물품 공급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이들 절수사찰에서 나오는 토산물 등을 조달 받음으로써 제수 비용의 일부를 덜 수 있었다. 한편 궁방의 원당으로 지정되면 왕실의 정치적·경제적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절수사찰이 되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후기에는 궁방의 토지 절수와 더불어 원당 남설 문제가 조정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궁방이 토지 등을 절수하고 원당을 남설하면서 이들 토지의 수조권과 사찰에서 제공하던 잡역이 궁방으로 유입되었고, 이는 곧 중앙과 지방 관청의 수입 감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종, 숙종, 정조대에는 궁방의 원당을 혁파하라는 명이 내려지기도 했다.

내용 및 특징

『조선왕조실록』에는 절수사찰과 관련된 두 건의 기사가 전한다. 1686년(숙종 12)에 황창부위(黃昌副尉)변광보(邊光輔) 가문에서 여주 장흥사(長興寺)를 옮기고 변광보의 묘를 절터로 이장하였다. 그러고는 절을 원당으로 삼을 것을 청하였다. 이에 이조에서는 궁가(宮家)에서 사찰을 절수하는 것은 원래 법례가 아니라고 반대하였으나 왕이 특별히 윤허하였다(『숙종실록』 12년 3월 28일). 1686년 기사에 등장하는 변광보는 소현세자의 딸인 경순군주(慶順郡主)의 남편으로, 요절한 인물이다. 그의 묘는 경순군주와의 합장묘로, 오늘날의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장흥리 장흥마을 서쪽의 대렴봉 줄기에 있다. 이곳에 있던 장흥사는 역사가 깊은 사찰로, 장흥리라는 지명 또한 여기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왕실 가문의 위세에 절은 한순간에 묘역으로 전락하였고, 명맥만 남아 변광보 가문의 원당이 되었다. 장흥사는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억불의 시대에 사찰이 권세 있는 양반가의 침탈을 받은 것은 흔한 일이었다.

1713년(숙종 39)에는 대사간이관명(李觀命)이 상소를 올려, 안동의 세 가지 민폐에 관해 아뢰었다. 그 첫째는 장마철마다 일어나는 수재에 대한 제대로 된 대비책이 없다는 점이고, 둘째는 황장목(黃膓木)을 진상하는 폐단이며, 셋째가 절수사찰의 폐단이었다(『숙종실록』 39년 4월 5일). 그런데 『숙종실록』에는 앞의 두 조항에 관해서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절수사찰에 관해서는 경사(京司)의 절수하는 사찰의 폐단을 말한 것으로 왕이 이를 금지하도록 했다고만 되어 있을 뿐 상세한 내용은 생략되어 있다.

변천

조선후기 신분제 사회에서 승려는 국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명승에 위치한 사찰은 양반들의 유흥 장소로 이용되었고, 산간에 위치한 사찰들은 각종 산채와 진귀한 음식을 제공하는 공급처가 되었다. 하지만 왕실원당으로 지정된 사찰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사찰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왕실원당으로 지정되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해당 사찰이 왕실원당으로 지정되면 사찰에서 담당하던 역이 모두 지방 관아나 중앙 관청의 부담이 되었고 그만큼 국가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호조를 비롯한 조정의 관료들은 왕실원당의 설치 및 절수사찰의 증가를 적극 반대하였다. 이에 현종, 숙종, 정조대에 3차례 원당 철폐령이 내려졌지만 크게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고, 왕실에서는 철폐령이 내려진 이후에도 꾸준히 원당을 설치해갔다.

참고문헌

  • 한상길, 『조선후기 불교와 사찰계』, 경인문화사, 2006.
  • 탁효정, 「조선시대 왕실원당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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