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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5 기준 최신판



한어의 음운에 대해 연구하는 한어 음운학을 줄여서 이르는 말.

개설

운학(韻學)은 성모(聖母)·운모(韻母)·성조(聲調) 등 한어(漢語)의 음운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으로, 성운학(聲韻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운학은 한시의 음률(音律) 및 압운(押韻)과 관련하여 사성(四聲)을 구분하고, 운(韻)에 따라 한자들을 정리하는 방법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근대까지는 낱개 글자 음에 대한 연구가 주종을 이루었다.

내용 및 특징

운학은 남북조시대인 6세기경, 한시의 음률에 관심이 높았던 남조(南朝)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어의 발음과 관련된 사항들을 고찰하는 학문으로, 음절 내의 구조를 분석하고 음절이 성조와 결합하는 방식 등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예부터 중국어에서는 한 음절을 성모와 운모로 나누는 이분법적 구분 방식을 취하였다. 음소적 구분도 아니고 음절적 구분도 아닌 애매한 형태인데, 운학 역시 이러한 방식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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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학에서는 표와 같은 음절 인식을 바탕으로, 음의 높낮이와 관련된 평성(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입성(入聲) 등의 사성을 구분하고 운에 따라 분류하고 정리하는 방법으로 글자들의 음을 정립하였다. 그 결과물이 각 시대에 편찬된 운서(韻書)인데, 당대 운학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운서는, 방대한 영토와 다양한 민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발음의 혼란을 막고 언어의 통일을 이루기 위한 전거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운서로는 수나라 때인 601년(수 문제 21)에 육법언(六法言) 등이 편찬한 『절운(切韻)』, 1008년(북송 진종 11)에 북송의 진팽년(陳彭年) 등이 편찬한 『광운(廣韻)』, 송나라의 학자 황공소(黃公紹)가 편찬한 『고금운회(古今韻會)』, 명나라 때인 1375년(명 태조 홍무제 8)에 악소봉(樂韶鳳) 등이 펴낸 『홍무정운(洪武正韻)』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당나라 말기부터는 이러저러한 등운학(等韻學)과 더불어 운도(韻圖) 작성법이 발달하였다. 운도에서는 자음의 성모는 좌우로, 운모는 상하로 각각 배열하는 방식으로 자음을 나타내는데, 송나라 때의 『운경(韻鏡)』과 『절운지장도(切韻指掌圖)』 등이 대표적이다.

운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던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 세종은 당시 중국 원음과 괴리가 심했던 우리 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신숙주(申叔舟)와 성삼문(成三問) 등 집현전 학자들에게 명하여 『동국정운(東國正韻)』을 편찬하게 하였는데(『세종실록』 29년 9월 29일), 이는 당시의 학자들이 중국 운학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중종 때의 최세진(崔世珍) 또한 중국어 이론과 실용에 모두 능통한 학자로, 『사성통해(四聲通解)』, 『운회옥편(韻會玉篇)』을 편찬하는 등 운학과 관련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중종실록』 34년 5월 17일). 이후 실학이 대두된 17~18세기 무렵에는 정약용(丁若鏞)을 비롯해 박성원(朴性源) 등이 우리나라 한자음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운서를 엮으면서 운학을 계승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20세기 초의 국문연구소(國文硏究所)까지 이어져, 우리말을 연구하는 이론적인 바탕으로 작용하였다.

참고문헌

  • 『동국정운(東國正韻)』
  • 정경일, 『한국운서의 이해』, 아카넷, 2002.
  • 최영애, 『중국어란 무엇인가』, 통나무,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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