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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3 기준 최신판



마음이 바르면 글씨도 바르다는 의미의 서예 용어.

개설

당(唐)나라유공권(柳公權)에게서 비롯된 서예 용어이다. 유공권은 당나라 경조(京兆) 화원(華原) 사람으로 헌종(憲宗) 때 진사가 되었고, 서예에 뛰어났다. 처음에 왕희지(王羲之)를 공부하고, 이어 구양순(歐陽詢)과 우세남(虞世南)을 공부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중년 이후에는 안진경(顔眞卿)의 서풍(書風)을 닮아갔는데, 후세 사람들이 중당(中唐)의 서예를 논할 때 안진경과 유공권을 묶어 ‘안근유골(顔筋柳骨)’ 즉, 안진경의 힘줄과 유공권의 골기라 부르며 칭송하였다.

어떻게 하면 글씨를 잘 쓸 수 있냐는 목종(穆宗)의 질문에 “붓을 사용하는 것은 마음에 달려있으니, 마음이 바르면 붓도 바르게 됩니다[用筆在心 心正則筆正].”라고 대답한 고사는 후대에도 서예를 논할 때 자주 언급되었다. 이는 ‘글씨는 곧 그 사람과 같다[書與其人].’는 전통적인 서예관에 입각한 용어이다.

내용 및 특징

‘심정필정(心正筆正)’의 서예 정신은 조선시대에도 수용되었고, 조선전기로부터 왕과 관련한 기록에서 주로 확인된다. 1490년(성종 21)에 부사맹(副司猛)신은윤(辛殷尹)이 조맹부(趙孟頫)의 진필(眞筆) 족자 1쌍을 성종에게 바치며 “유공권은 획(畫)을 마음에서 얻어, 마음이 바르면 붓이 바르다는 말을 하였고, 정자(程子)는 획을 마음에서 얻어 서자(書字)가 매우 공경스러웠고, 주자(朱子)는 획을 마음에서 얻어 한결같이 그 중정(中正)함에 있었으며, 양자운(楊子雲)은 글씨는 마음이니, 곧 마음의 그림[心畫]으로 나타나 군자와 소인이 드러난다.”고 하면서, 성종이 유공권의 말을 체득하고 정자의 공경스러움을 스승으로 삼으며 주자의 중정함을 가지고 양자운의 심획(心畫)을 생각하시어, 심신(心神)에 모으고 정사(政事)에 편다면 그 다스리는 도리가 삼황오제(三皇五帝)에 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소를 올렸다. 이에 성종은 상소에 유공권의 말이 있는 것을 특별히 가상하게 여겨 신은윤에게 여러 물품을 하사하였다(『성종실록』 21년 3월 3일). 이상의 일화는 서예와 정치의 문제를 모두 ‘마음’으로 일원화한 인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조 또한 이 용어를 자신의 서예관으로 삼았다. 『영조어필첩(英祖御筆帖)』의 발문에서 영조는 유공권이 서예의 요체는 “마음이 바르면 붓이 바르다.”라고 목종에게 아뢴 고사를 인용하고, 자신은 ‘정심(正心)’ 두 글자를 내세워 후세에 전하고 싶다는 내용을 썼다.

한편 정조는 당시의 서예가 법도를 잃고 경박스러워지는 현상을 염려하여 심정필정의 서예 용어를 앞세워 서체반정(書體反正)의 이념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홍재전서(弘齋全書)』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심정필정의 서예 정신을 통해 순정한 고법(古法)을 회복하는 동시에, 참된 기운의 필법을 발현하여 당대의 풍속까지 바로잡고자 하였던 정조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문화사, 2010.
  • 한국학술정보 편집부, 『正祖 弘齋全書』, 한국학술정보, 2008.
  • 이민식, 「정조(正祖)의 서체반정(書體反正)」, 『경기사학』 6권, 경기사학회,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