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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0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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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심화 |
한글표제 | 심화 |
한자표제 | 心畵 |
분야 | 문화/예술/미술 |
유형 | 개념용어 |
집필자 | 김희정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심화(心畵)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성종실록』 21년 3월 3일 |
서예는 서예가의 마음이 표현되는 예술이라는 서예의 본질론적 정의.
개설
한나라의 양웅(揚雄)은 『법언(法言)』에서 “말은 마음의 소리요, 글은 마음의 그림이다[言心聲也 書心畵也].”라 하였는데, 이는 말과 소리가 주체의 마음에서 우러나온다고 하는 언어와 글의 본질론적 작용에 관한 것이다. ‘서심화야(書心畵也)’에서 ‘서(書)’는 본래 문장의 의미로 쓰였으나 후대 사람들이 서예적 의미로 끌어와 ‘서예는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개념으로 전이되고 확대되었다.
내용 및 특징
심화(心畵)는 한나라양웅의 문장론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법언』에서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섞으며 마음속의 바람과 언짢은 것을 전하는 것은 언어만 한 것이 없고, 천하의 일을 두루 다스리고 오래된 옛 일을 기록하며 천 리 밖에 있는 이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은 글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말은 마음의 소리요, 글은 마음의 그림이니, 소리와 그림에서 군자와 소인이 드러난다. 소리와 그림은 군자와 소인의 감정의 움직임에 기인한다.”라고 하였다. 말이나 문장에는 주체자의 심성과 사상이 저절로 표현되기 때문에 인격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론가들은 문장으로서의 ‘서’를 시각예술인 ‘서예’로 끌어다 쓰면서, ‘서예는 인격이 표현된 예술’이라는 본질론적 명제로 상정하였다. 이렇게 하여 양웅의 ‘심화’설은 한나라허신(許愼)의 ‘상형(象形)’설과 더불어 서론의 양축인 심학(心學)과 형학(形學)의 뿌리가 되었다.
변천
한나라양웅의 ‘심화’설은 ‘마음이 표현되는 예술’로 의미가 확대되면서 여러 서론이 생겨났다. 한나라의 채옹(蔡邕)은 “서예는 마음을 흩트리는 것이다[書者散也].”라고 하여, 마음이 얽매임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상태를 강조하였다. 남조제나라의 왕승건(王僧虔)은 “서예의 오묘함은 신채(神彩)가 으뜸이고, 형질은 다음이다.”라고 하여, 서예에서 형태보다 마음을 중시하였다. 당나라장회관(張懷瓘)은 “서예를 깊이 아는 자는 글자의 형태보다는 그 안에 담긴 정신만을 본다.”라고 하며, 왕승건의 이론을 좀 더 구체화하였다. 송나라주장문(朱長文)은 “안진경의 충렬함이 글씨에 보인다. 그의 서예는 마치 충신과 의사(義士)가 안색을 바르게 하고 조정에 서 있는 듯 강직한 기상과 엄격한 법도가 갖추어져 있다. 양웅이 ‘서는 마음의 그림이다.’라고 한 말이 안진경에서 믿을 만하다.”라고 하여, 양웅의 이론에 실례를 들었다. 또 송나라의 황산곡(黃山谷)은 “글씨를 배울 때는 모름지기 마음속에 도의(道義)를 간직하고, 성철(聖哲)의 학문으로 넓혀야 귀해진다.”라고 하여, 서예 공부의 자세를 지시하였다. 고대 서론을 종합 정리한 청나라의 유희재(劉熙載)는 “양웅은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다.’라고 하였듯이, 서예는 마음공부[心學]이다. 만약 타인의 마음보다 못하면 그보다 글씨를 잘 쓰려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 글씨를 쓰는 것은 의지를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아예 서예를 ‘심학’으로 규정지어버렸다. 이렇듯 양웅의 ‘심화’설은 시대가 갈수록 서예를 ‘심학’으로 심화해갔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대개 양웅이 ‘마음이 표현된 글씨’의 의미로 쓴 ‘심화’를 마음이 담긴 필획의 의미인 ‘심획(心畵)’으로 쓰곤 하였다(『성종실록』 21년 3월 3일).
참고문헌
- 『법언(法言)』
- 송명신,『중국서예이론사』, 묵가, 2011.
- 陶君明, 『중국서론사전』, 호남미술출판사, 2001.
- 梁披雲 외, 『중국서법대사전』, 서보출판사, 1985.
- 周俊杰 외, 『서법지식1000제』, 하남미술출판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