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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9 기준 최신판



임진왜란 당시에 공을 세운 승려들에게 내려 준 승려 자격증.

개설

선과첩(禪科帖)은 조선 선조 연간에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의승군(義僧軍)에게 포상으로 지급한 문서로, 도첩(度牒)과 같은 기능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명을 받은 도총섭(都摠攝)휴정(休靜)은 근왕(勤王)의 기치를 내걸고 의승군을 모집하여 전공을 세우고 성을 수축하는 등 큰 활약을 하였다. 의승군이 여러 가지 활약을 하면서 승군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생긴 조정에서는 1593년(선조 26)부터 전쟁에서 공을 세운 승려들에게 선과를 내려 주기로 하였다. 이때 선과를 주면서 발급해 준 문서가 선과첩이다.

선과는 본래 승려들의 신분을 인정해주는 과거 시험이었는데, 전쟁 당시 군공을 세운 일반인들에게 공명첩을 발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승려들에게 선과첩을 발급해 주면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왜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적의 목을 벤 승군에게 선과첩을 주도록 하였다(『선조실록』 26년 6월 29일).

선과첩은 비변사(備邊司)에서 발급했는데, 그 당시 승군을 이끌고 있던 도총섭 휴정과 총섭(摠攝)유정(惟政), 의엄(義嚴) 등에게 선과첩을 나누어 주게 하여 승군을 수월하게 모집하고 통솔할 수 있도록 하였다(『선조실록』 26년 7월 19일) (『선조실록』 29년 12월 5일). 또한 선과첩을 발급해 주고 군량을 모으기도 하였다(『선조실록』 29년 12월 8일). 한편 전쟁으로 인해 인력이 부족해 한양과 지방에 쌓여 있는 시체를 처리하기 어렵게 되자, 역시 승려들을 모집하여 시체와 유골을 잘 묻어 준 경우 선과를 주는 것으로 포상하려 하였다(『선조실록』 26년 10월 2일). 이러한 선과첩은 도첩제가 폐지된 상황에서 승려의 자격을 증명하는 일종의 신분증이 되어 도첩을 대신하였다. 승려의 노동력을 활용하고 그 반대급부로 출가자로서의 신분을 인정하는 이러한 방법은 조선시대 후기 불교 시책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참고문헌

  • 국사편찬위원회 편,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두산동아, 2007.
  •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신구문화사, 2010.
  • 이장희, 「임진왜란 중 의승군의 활동에 대하여」, 『사명당 유정』, 지식산업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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