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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7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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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사성 |
한글표제 | 사성 |
한자표제 | 四聲 |
상위어 | 성조(聲調) |
하위어 | 평성(平聲), 상성(上聲), 거성(去聲), 입성(入聲) |
동의어 | 사운(四韻) |
관련어 | 성조(聲調), 방점(傍點), |
분야 | 문화/인문학/어문학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최병선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사성(四聲) |
중세 국어에서 음절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평성·상성·거성·입성의 네 가지 성조를 통틀어 이르는 말.
개설
사성은 평성(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입성(入聲)의 네 가지 성조(聲調)를 통해 음절의 고저(高低)를 구분하는 음조(音調)의 형식을 가리킨다. 중국의 경우 육조(六朝) 시대 양(梁)나라의 심약(沈約) 등에 의해 발음에 응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수나라와 당나라 때까지 한자음을 성조에 따라 네 가지로 구분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처음으로 언급되었고, 그 뒤 16세기까지 한글 표기에 적용되었다.
내용 및 특징
중국어는 성조를 통해 의미를 변별하는 소위 성조 언어이다. 오늘날 중국의 표준어인 베이징어도 사성 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평성이 음평(陰平)과 양평(陽平)으로 분리되고 입성은 다른 소리들에 합쳐지는 등 과거와는 차이가 있다. 한편, 성조는 단어의 의미를 변별하는 역할뿐 아니라 중국 한시의 율격을 규정하는 기준이기도 하였다. 당나라 때는 상성과 거성, 입성을 합쳐서 측성(仄聲)이라고 부르고, 절구(絶句)나 율시(律詩)의 운율을 평성과 측성 즉 평측(平仄)으로 규정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특히 중국의 음성학 이론인 성운학(聲韻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에서 사성과 관련된 내용은 이전까지 전혀 언급된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가치를 갖는다. 비록 중국의 이론과 용어를 차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당시 우리말의 특성에 주목하여 평성은 ‘가장 낮은 소리’, 거성은 ‘가장 높은 소리’, 상성은 ‘처음이 낮고 나중이 높은 소리’로 분류하였다. 이는 저조(低調)와 고조(高調)로 이루어진 우리말 성조의 특징을 잘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입성은 중국어의 입성과 같이 받침이 [p], [t], [k]와 같은 폐쇄음 계열일 경우에 적용되는데, 촉급하게 닫는 소리라는 특징이 있다. 평성·상성·거성 등 나머지 소리는 고저와 연관되어 있는 데 비해 입성은 빠르기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원칙적으로는 성조 체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조는 글자 왼쪽에 방점(傍點)을 찍어 표시했는데, 평성은 점을 찍지 않고, 거성은 점을 하나, 상성은 두 개를 찍어 나타냈다. 입성의 경우에는 따로 구별되는 방점 표기는 없고, 받침 자리의 자음을 보고 확인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변천
1445년(세종 27)에 창작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부터 1527년(중종 22)에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에 이르기까지는 대체로 사성 표기가 엄격하게 반영되었다. 그러나 1586년(선조 19)에 국가 기관인 교정청(校正廳)에서 발간한 『소학언해(小學諺解)』를 살펴보면, 성조 즉 방점 표기의 혼란상을 발견할 수 있다. 표기의 보수성 등을 고려하더라도 16세기 전반에 이미 성조의 초분절음소로서의 역할은 상당 부분 혼란을 겪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이며, 16세기 말에는 완전히 소멸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평성과 거성은 짧은소리로, 상성은 긴소리로 바뀌어, 다시 말해 소리의 높이가 소리의 길이로 바뀌어 현대 국어로 이어졌다. 또한 경상도 방언과 함경도 방언에는 지금도 성조가 일부 남아 있다.
참고문헌
- 『훈몽자회(訓蒙字會)』
- 이기문, 『國語史槪說』(新訂版), 태학사, 1998.
- 김영국, 「訓民正音 解例本의 四聲體系와 傍點」, 『한국어문학연구』32,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