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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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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백희 |
한글표제 | 백희 |
한자표제 | 百戱 |
동의어 | 백희가무(百戱歌舞) |
관련어 | 기예(技藝), 나례희(儺禮戱), 잡희(雜戲) |
분야 | 문화/예술/음악 |
유형 | 개념용어 |
시대 | 조선시대 |
집필자 | 배인교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백희(百戱)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6년 윤7월 9일 |
온갖 기예와 잡희.
내용
조선시대에 행했던 나례(儺禮)에서 재인들이 벌였던 각종 기예와 잡희를 일컬어 백희(百戱), 혹은 백희가무(百戱歌舞)라 한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에 “백희가무를 즐겼다.”고 한 것과 통한다. 조선전기에 임금이 부묘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와 중국에서 온 사신을 영접할 때 채붕(綵棚)을 치고 나례희(儺禮戱)를 했었는데, 나례희에서 행했던 탈놀음·사자무·방울 놀이·땅재주·장간희(長竿戱) 즉, 솟대타기·줄타기·토화(吐火) 즉, 불 토해내기 등과 같은 여러 가지 희극적인 공연 종목이 포함된다.
용례
翼之還啓 又使代言權瑗固止之 至是麟等至 結山棚陳百戲 命世子褆率百官郊迎 禧等奉樂器置太平館 詣昌德宮問疾而退 命議政府設下馬宴 使知申事黃喜 贈二人鞍馬 二人 皆本國所進宦者也(『태종실록』 6년 윤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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