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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4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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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궐봉 |
한글표제 | 궐봉 |
한자표제 | 闕封 |
상위어 | 진상(進上) |
관련어 | 궐공(闕貢), 봉진(封進), 공헌(貢獻), 어공(御供), 공상(供上) |
분야 | 경제/재정/재정용어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태조~순종 |
집필자 | 김덕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궐봉(闕封)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인조실록』 3년 3월 3일 |
조선시대에 임금에게 진상하는 물건을 봉하여 올리는 일을 어떤 이유로 못한 것.
내용
조선시대에 임금을 포함하여 왕실이 사용하는 물품은 원칙적으로 진상(進上)으로 충당되었다. 진상이란 감사·병사·수사·수령 등 지방관이 자기 지역의 특산물을 임금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그 진상물(進上物)을 포장하여 올리는 것을 봉진(封進)이라고 하는데, 봉진을 제때에 제 물건을 하지 못하는 것을 궐봉(闕封)이라고 말하였다. 궐봉의 요인은 기후가 고르지 못하여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거나 천재지변으로 운송에 차질이 발생하거나, 아니면 지방관이 책무를 소홀히 한 데에 있었지만, 그에 따른 지방관의 문책이나 다른 물건으로 대체하여 바치는 대봉(代封)이 뒤따랐다.
용례
命除濟州貢獻闕封者追徵之令 蠲大靜巫男巫女稅布 先是濟州人金孝義等上言曰 本州僻處海外 貢獻舡路 動經數月 間有漂沒之患 御供闕封居多 追徵之弊 無歲無之 且大靜所在神祠則革罷已久 而稱以巫男巫女稅布 年年徵捧 民殆不堪 伏願俯察遐氓之悃 以除無窮之弊 戶曹請從其願 故有是命(『인조실록』 3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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