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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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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기정병 |
한글표제 | 기정병 |
한자표제 | 騎正兵 |
동의어 | 정기병(正騎兵) |
관련어 | 정병(正兵), 정보병(正步兵) |
분야 | 정치/군사·국방/편제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김종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기정병(騎正兵)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중종실록』 7년 2월 6일 |
양인의 의무 군역인 정병 중 말을 타고 싸우는 군인.
내용
조선초기에 양인(良人)의 육상(陸上) 의무 군역을 정병(正兵)이라 부른 것은 1459년(세조 5)의 병제 개편 때부터였다. 이전까지는 서울에 번상 시위하는 군사를 시위패(侍衛牌), 각 지방에서 근무하는 군사를 영진군(營鎭軍)·수성군(守城軍), 평안·함길도의 군사를 정군(正軍)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때부터 우선 평안·함길도의 정군(正軍)과 나머지 도의 시위패(侍衛牌)를 통일하여 정군(正軍)이라 부르기로 하고, 말이 있는 사람을 정기병(正騎兵) 혹은 기정병(騎正兵), 말이 없는 사람을 정보병(正步兵)이라 규정하였다. 그리고 1464년(세조 10)에는 영진군·수성군마저 정병에 합속(合屬)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이로써 수군(水軍)을 제외한 양인의 의무 군역은 모두 정병이라 칭하게 되었다.
용례
特進官李蓀曰 臣近因推盜金銀事 知騎兵代立之弊 祖宗朝則騎正兵 稱侍衛牌 令各持騎卜馬 常寓軍營 以待不時之用 故世祖朝 卒有李施愛之變 輒令領騎兵以往 聞命卽行者 以騎卜馬先具也 今則番上騎兵 各接私家點考 卽日皆還送騎卜馬 非但正兵爲然 甲士·別侍衛皆然 今若遼東之變 出於急遽 則雖欲遣兵 不可得也 且騎兵則乃取才軍士 而近者無賴之徒 率多代立 侍衛守直等事 從此虛踈 軍政廢弛 此弊不小 使騎兵毋得代立 依祖宗朝例 皆寓軍營 各具騎卜馬事 請申其法 使軍士預知(『중종실록』 7년 2월 6일)
참고문헌
- 金鍾洙, 「16세기 甲士의 消滅과 正兵立役의 變化」, 『國史館論叢』32, 1992.
- 陸軍士官學校 韓國軍事硏究室, 『韓國軍制史-近世朝鮮前期篇』, 陸軍本部,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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