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군(闕軍)"의 두 판 사이의 차이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XML 가져오기)
 
(차이 없음)

2017년 12월 10일 (일) 02:21 기준 최신판



군무(軍務)에서 이탈한 군사.

내용

조선초기의 군사제도는 양인개병제(良人皆兵制)와 병농일치제(兵農一致制)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양인 농민들은 모두 군역에 동원되어 여러 병종(兵種)의 정군(正軍)이나 봉족(奉足)으로 편제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때 군역에 편제된 사람들이 군무에서 이탈하는 궐군(闕軍)이 나타날 경우 군사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이에 조선초기 정부에서는 주로 군무에서 이탈할 염려가 없는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에게 군역을 부과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16세기에 들어와 군역제도의 붕괴 속에서 정군 및 보인이 군역을 피하여 도망하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즉 궐군 현상이 대대적으로 전개된 것이다. 이에 16세기 후반 이후 정부에서는 돈을 주고 군인을 고용하는 모병제의 형태를 고려하게 된다.

용례

闕軍充定 乃今日軍政之急務 (『선조실록』 37년 7월 20일)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金鍾洙, 「군역제도의 붕괴」, 『한국사 28』, 국사편찬위원회, 1996.
  • 李泰鎭, 「軍役의 變質과 納布制 實施」, 『韓國軍制史 - 朝鮮前期篇』, 陸軍本部,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