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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0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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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남만 |
한글표제 | 남만 |
한자표제 | 南蠻 |
대역어 | 남번(南藩) |
상위어 | 사이(四夷) |
하위어 | 도이(島夷), 일본(日本), 대마도(對馬島), 일기도(一岐島), 구주(九州), 유구(琉球), 섬라(暹羅), 조왜(爪哇) |
관련어 | 남만선(南蠻船), 만인(蠻人), 남만인(南蠻人), 길리시단(吉利施端), 홍모(紅毛), 홍모국(紅毛國), 남만홍모적(南蠻紅毛賊), 파랑국(波浪國), 불랑국(佛浪國), 화란(和蘭), 영길리국(英吉利國) |
분야 | 정치/외교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동아시아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신명호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남만(南蠻)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조실록』 3년 7월 29일, 『인조실록』 16년 3월 13일, 『효종실록』 4년 8월 6일 |
조선시대에 동남아 지역 또는 서양의 여러 민족을 지칭하던 용어.
개설
고대 중국인들은 주변의 모든 민족을 이적시하여 사이(四夷)라고 하였는데, 남쪽의 여러 민족을 통칭하여 남만(南蠻)이라고 하였다. 한국의 고려∼조선시대 사람들 역시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북쪽의 유목민족을 북적(北狄)이라 하였고, 남쪽의 해양민족들을 남만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건국을 전후하여서는 일본(日本)·대마도(對馬島)·일기도(一岐島)·구주(九州)·유구(琉球)를 포함하여 동남아 지역의 민족들 모두를 남만이라고 하였다. 현재 이 나라들은 모두 일본에 속하였다. 그러나 조선전기에 조선 정부가 유구·일본과 교린체제를 확립한 이후부터는 유구와 일본을 제외한 동남아 지역의 여러 민족을 남만이라고 하였으며, 15세기 말의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포르투갈·네덜란드 등 서양인들이 동남아 지역에 진출한 후에는 이들 역시 남만이라고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사람들 역시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북쪽과 남쪽의 여러 민족을 북적과 남만이라 통칭하였음은 세조대의 “내가 즉위한 이후에 남만과 북적으로서 내부(來附)하는 자가 심히 많은데”라는 기록에서 확인된다(『세조실록』 3년 7월 29일). 그러나 조선전기 남만이라는 용어는 남쪽의 여러 민족보다는 유구와 일본을 제외한 동남아 지역의 여러 민족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신숙주의 『해동제국기』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해동제국기』의 유구에 관한 내용 중에 “서쪽으로는 남만과 중국에 교통하고, 동쪽으로는 일본과 우리나라에 교통한다.”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유구가 남만과 구분되어 인식되었음을 보여 준다. 아울러 『해동제국기』의 일본 구주에 관한 내용 중에 “이곳은 유구국과 남만 등의 장삿배가 모이는 지역이다.”는 부분 역시 일본이 남만과 구분되어 인식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조선전기의 남만은 동남아 지역 중에서도 특히 조선에 내왕하던 동남아 지역의 민족들 예컨대 섬라(暹羅)·조왜(爪哇) 등과 비록 조선에 내왕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교류하던 안남(安南) 등을 남만이라고 하였다. 섬라는 현재의 태국이고 조왜(爪哇)는 현재의 인도네시아로서 이들 민족은 조선전기에 조선 정부에 사절을 파견하였다. 안남은 현재의 베트남으로서 비록 조선과 공식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조선에서 중국에 파견된 사절 등을 통하여 간접적인 교류를 가졌다.
변천
실록에 의하면 조선후기에는 길리시단(吉利施端)이 새로운 남만으로 등장하였다. 길리시단은 기독교를 의미하는데 이들은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 등 서양인을 의미하였으며 체모가 붉어서 홍모(紅毛)·홍모국(紅毛國)·남만홍모적(南蠻紅毛賊) 등으로도 불리었다. 15세기 말의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포르투갈·네덜란드 등 서양인들이 동남아·일본 등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들에 관한 소식이 조선에 전해지면서 이들을 길리시단 또는 남만으로 불렀던 것이다. 길리시단은 『인조실록』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동래부사정광필이 치계하기를, ‘가강(家康)이 일본의 관백이었을 때, 길리시단이라고 하는 남만인들이 일본에 와 살면서 단지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것만 일삼고 인사(人事)는 폐하였으며, 사는 것을 싫어하고 죽는 것을 기뻐하며 혹세무민하였는데, 가강이 잡아다 남김없이 죽여 버렸습니다. 이때에 이르러 도원(島原) 지방의 조그만 동네에 두서너 사람이 다시 그 술수를 전파하느라 마을을 출입하면서 촌사람들을 속이고 유혹하더니, 드디어 난을 일으켜 비후수(肥後守)를 죽였습니다. 이에 강호(江戶)의 집정(執政) 등이 모두 죽였다고 합니다.’ 하였다(『인조실록』 16년 3월 13일).” 여기에 등장하는 길리시단은 포르투갈 사람을 의미하는데, 당시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동남아와 일본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포르투갈은 파랑국(波浪國) 또는 불랑국(佛浪國)으로 표기되었으며 이와 관련된 기록이 임진왜란을 전후해 실록에 등장하였다. 실록에는 포르투갈에 뒤이어 박연과 하멜 같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역시 남만인으로 불리었다(『효종실록』 4년 8월 6일). 네덜란드는 화란(和蘭)으로 표기되었으며 뒤이어 등장하는 영국은 영길리국(英吉利國)으로 표기되었다. 18세기에는 서세동점이 본격화되면서 더 많은 유럽국가가 실록에 등장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37, 탐구당, 2000.
- 정면, 「‘南蠻’ 및 ‘海南’ 諸國과 隋唐代 중국의 국제관계」, 『동북아역사논총』 35, 동북아역사재단, 2012.
- 하우봉, 「동남아시아 국가와의 관계」, 『한국사』 22, 국사편찬위원회, 1995.
- 하우봉, 「유구와의 관계」, 『한국사』 22, 국사편찬위원회, 1995.
- 하우봉, 「일본과의 관계」, 『한국사』 22, 국사편찬위원회, 1995.
- 『한국역사용어시소러스』, 국사편찬위원회, http://www.thesaurus.histor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