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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20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에 능침사찰이나 수륙사 등에 지급한 토지.

개설

위전(位田)은 국가의 관리에게 지급한 토지를 말한다. 조선초기 과전법(科田法) 체제에서는 관리들의 녹봉과 관청 등의 운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위전을 지정하였다. 관리의 녹봉을 위한 광흥창위전(廣興倉位田), 왕실의 공상(貢上)을 위한 풍저창위전(豊儲倉位田), 중앙 각 관청에 배정한 각사위전(各司位田) 등이 여기에 속한다. 국가에서는 토지를 각 기관에 나누어 주고, 각 기관이 독자적으로 세금을 거두어 녹봉과 운영비 등을 충당하도록 하였다. 거승위전(居僧位田)은 국가의 능침사찰이나 왕실원당(王室願堂) 등을 수호하는 승려의 생계를 돕기 위해 지급하였다.

내용 및 특징

거승위전은 직전(直田)의 일종으로 승위전(僧位田)이라고도 하였다. 직전제는 1466년(세조 12)부터 과전법을 대신해 시행되었다. 과전법 체제에서는 현직 관리뿐 아니라 직책이 없는 산관(散官)에게도 과전을 지급하였고, 수신전(守信田)·휼양전((恤養田) 등의 명목으로 세습을 인정하였다. 그와 달리 직전은 현직 관리에게만 나누어 준 수조지(收租地)로, 원칙적으로 세습을 불허하였다. 승려는 비록 관리는 아니었지만 능침을 수호하는 직책이 인정되었기에 거승위전을 지급하였다.

변천

1557년(명종 12)에는 흉년이 들어 관리의 직전을 중지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봉은사(奉恩寺)의 거승위전은 왕명에 따라 그대로 지급하도록 하였다. 대신들의 반대가 잇따랐지만 명종은 뜻을 꺾지 않았다(『명종실록』 12년 2월 23일). 당시에는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영향으로 승과(僧科)가 부활되는 등 다양한 불교 중흥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거승위전 지급을 중지하라는 대신들의 요구를 명종이 완강히 거절한 것은 문정왕후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상영, 「보우의 불교부흥운동과 그 지원세력」, 『논문집』3, 중앙승가대학교, 1994.
  • 이병희, 「조선전기 사사전의 정리와 운영」, 『전남사학』7, 전남대학교 사학과, 1992.
  • 한우근, 「세종조에 있어서의 대불교시책」, 『진단학보』26, 진단학회,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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