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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13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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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서안지악 |
한글표제 | 서안지악 |
한자표제 | 舒安之樂 |
상위어 | 아악(雅樂) |
관련어 |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 |
분야 | 문화/예술/음악 |
유형 | 작품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현재 |
왕대 | 조선~현재 |
집필자 | 이정희 |
상세유형 |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서안지악(舒安之樂)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21년 1월 16일, 『세종실록』 24년 11월 24일, 『영조실록』 25년 4월 11일, 『세종실록』 12년 윤12월 23일, 『세종실록』 14년 9월 19일 |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에 속하는 여러 궁중 의례에서 사용된 악곡명의 하나.
개설
서안지악(舒安之樂)은 사직(社稷)·풍운뇌우(風雲雷雨)·선농(先農)·선잠(先蠶)·우사(雩祀)·문묘(文廟)·황단(皇壇)의 제례, 조하(朝賀), 조회(朝會), 회례(會禮), 책봉(冊封), 교서(敎書) 반강(頒降), 양로연(養老宴), 문무과(文武科) 방방(放榜), 사신연(使臣宴) 등 길례, 가례와 빈례에 속하는 여러 의례에서 활용된 악곡명이다. 현재는 문묘 제례에서만 사용된다.
내용 및 특징
서안지악은 세종대에 종묘·사직·풍운뇌우·산천·성황·선농·선잠·우사·문묘 등의 제례에서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초헌례(初獻禮)가 끝나고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례(亞獻禮)가 시작되기 전에 문무(文舞)가 퇴장하고 무무(武舞)가 입장할 때 연주하도록 규정되었다(『세종실록』 21년 1월 16일), (『세종실록』 24년 11월 24일). 세종대 이후에도 제례에서의 연주 전통은 종묘제례를 제외한 나머지 제사에서 지속되었다. 세조대에 종묘제례악을 정비한 이후 종묘제례에서는 더 이상 서안지악을 연주하지 않았다.
영조대에 이르러 대보단(大報壇) 제례가 신설되면서 서안지악은 다른 제례에서처럼 초헌례 후 아헌례 시작 전에 연주되었다(『영조실록』 25년 4월 11일). 고종대에 이르러 갑오개혁 때 대보단 제례를 폐지하고, 1897년(고종 34)에 풍운뇌우의 신주를 환구단으로 옮기면서 대보단 제례와 풍운뇌우제를 제외한 사직제, 선농제, 선잠제, 우사, 문묘 제례 등에서만 지속되었다. 이후 융희 연간에 국가 전례가 축소되는 과정을 겪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현재는 문묘제례악에서만 연주 관행이 전승되고 있다.
현재 문묘제례악에서 헌가(軒架)가 연주하는 서안지악의 선율은 고선궁(姑洗宮)으로 ‘고청대응이[姑汏應夷], 유이청대응[蕤夷汏應], 청협청대무이[浹汏無夷], 청대응고유[汏應姑蕤], 고청대유고[姑汏蕤姑], 청협청대고이[浹汏姑夷], 유고청대응[蕤姑汏應], 청대이유고[汏夷蕤姑]’가 있다.
제례악의 용도 외에 세종대 가례의 여러 의식에서도 서안지악이 악곡명으로 등장한다. 조하, 회례연, 책봉, 교서 반강, 문무과 방방, 양로연 등의 의례에서 왕세자나 관료 등이 왕에게 절할 때 연주되었다(『세종실록』 12년 윤12월 23일), (『세종실록』 14년 9월 19일). 세종대 동지(冬至)에 회례연에서 연주된 선율은 ‘고이무이(姑夷無夷), 고이응청태[姑夷應汰], 응청태고이[應汰姑夷], 무이유고(無夷蕤姑)’이다.
또한 『세종실록』「오례」 빈례 의식에 의하면, 유구국(琉球國)이나 일본의 사신에게 서폐를 받는 의식[受隣國書幣儀] 및 그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 때[宴隣國使儀] 시신(侍臣) 및 사신들이 절하는 과정에서도 연주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빈례에서도 서안지악의 용례를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악학궤범(樂學軌範)』
- 『춘관통고(春官通考)』
- 『대한예전(大韓禮典)』
- 김종수, 「조선후기 황단악 연구」, 『국악원논문집』 제8집,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