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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02 기준 최신판



1910년대 일제가 조선의 전통적인 정악(正樂)을 유지 계승시키기 위해 재정적으로 지원한 민간단체.

개설

1911년 3월 대한제국기 기로소(耆老所)에서 설립된 조선정악전습소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조선정악전습소는 일제강점기 초 국악과 양악을 지도하던 유일한 사설 음악교육 기관으로 조선 왕실의 음악인 정악을 전승하던 조선정악원의 모체이다. 조선정악원은 해방 이후 한국정악원으로 바뀌었다. 조선정악전습소는 1909년 12월 설립된 조양구락부(調陽俱樂部)에서 비롯되었다. 조양구락부는 1909년 9월 15일 백용진(白瑢鎭)의 집에서 발기회를 열고 구가악(舊歌樂)을 전습하며 신악(新樂)을 발전시킨다는 목적하에 발족한 최초의 민간 음악 기관이었다. 조양구락부의 발기 취지를 보면, 대한제국 황실 음악을 전 국민이 영원토록 암송하게 하고 애국 사상 고취를 위해 애국가를 만들어 보급한다고 하였다.

조양구락부는 보다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위해 조선정악전습소로 전환되었고, 조선 음악과 서양 음악을 모두 교습하였다. 학생들은 중등교육 이상을 수료하였으며, 정원은 50명이었다. 대표적인 학생이 홍난파이다. 그러나 정악유지회(正樂維持會)가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교육 활동은 중단되었고 해방까지 겨우 명맥만 유지하였다.

정악유지회는 대한제국 황실로부터 특별한 지원을 받았다. 1911년 순종은 정악유지회에 일시금(一時金) 2,400엔을 하사하였고 또한 매달 300엔을 내려주도록 하였다. 순종이 하사금을 내린 목적은 모두 정악을 장려하는 데 있었다(『순종실록부록』 4년 6월 16일). 그러나 순종 사후에는 지원이 끊기고 말았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일제강점기에 초기 한국 전래의 정악을 유지시키고자 재정적으로 지원을 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대한제국이 일제 식민지가 되면서 정악을 전수하던 황실 기관이 사라지자 그 명맥을 잇고자 했다.

조직 및 역할

정악유지회의 조직 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조양구락부가 주도한 점으로 미뤄 그 임원들이 대거 참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양구락부의 임원은 총재 이준(李埈), 부총재 유길준(兪吉濬), 총무 한석진(韓錫振), 간사 조남승(趙南升)과 한진구(韓振九), 회계 김영배(金寧培)와 한규우(韓圭祐), 서기 유종열(劉鍾烈), 평의원 홍긍섭(洪肯燮)‧정교(鄭喬)‧맹덕민(孟德敏)‧위홍석(魏洪奭)‧심선성(沈宣性)‧대규선(大揆善)‧최경순(崔敬淳)‧예종석(芮宗錫)‧한만용(韓晩容)‧석진위(石鎭衡)‧임진수(林鎭洙)‧한용경(韓用璟) 등이었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新報)』
  • 『황성신문(皇城新聞)』
  • 송방송, 『한국음악통사』, 일조각, 1988.
  • 이상규, 「20세기 이후 국악교육의 전통과 계승」, 『한국음악연구』 3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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