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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50 기준 최신판



조선후기에 각 지방관청에서 백성의 잡역과 관아의 경비를 조달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관.

내용

조선후기에 지방관청에는 잡역세를 운영하여 백성의 잡역과 관아의 경비를 조달하였다. 이것을 위한 기구로 보민고(補民庫)·대동고(大同庫)·칙수고(勅需庫)·차수고(差需庫)·고마고(雇馬庫) 등이 설립되어 있었다. 이러한 기구들은 백성들이 부담해야 하는 민역(民役)을 수행한다고 하여 보통 민고(民庫)로 통칭되었지만, 지역에 따라 재정 규모와 담당 용도 면에서 중요도는 달랐다. 가령 삼남(三南)에서는 민역을 담당하는 보민고가, 양서(兩西)에서는 민역과 칙수(勅需)를 담당하는 대동고와 칙수고가, 관북(關北)에서는 민역과 차수(差需)를 담당하는 대동고와 차수고가 중요하였다. 특히 대동법이 실시되지 않은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대동고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였다.

용례

憲府啓曰 兩西人民之凋瘵 實由於勑需之責納 雖有民役之煩重 而以其田役之稍輕 猶爲保存 各邑之或稱勑需廳 或稱大同庫 蓋出於存本取利 以紓民力 則當初創置 非不便好 而設久弊滋 給債懲捧之際 已多侵擾之患 且民役之出不出 惟係於勑行之來不來 逐歲之例捧 猶夫前日 在庫物種 不加多 (『숙종실록』 33년 12월 18일)

참고문헌

  • 『평안도내각읍민고정례절목(平安道內各邑民庫定例節目)』
  • 김덕진, 『朝鮮後期 地方財政과 雜役稅』, 國學資料院,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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