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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46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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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모란관상회 |
한글표제 | 모란관상회 |
한자표제 | 牧丹觀賞會 |
대역어 | 목단관상회(牧丹觀賞會) |
관련어 | 관화회(觀花會), 궁내부(宮內府), 비원(秘苑), 습율회(拾栗會), 왕공족(王公族), 이왕가(李王家), 이왕직(李王職), 인정전(仁政殿), 조선귀족(朝鮮貴族),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창경궁(昌慶宮), 창경원(昌慶園), 창덕궁(昌德宮), 통감부(統監府), 황실(皇室), 후원(後苑), |
분야 | 생활·풍속/풍속/놀이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대한제국기 |
왕대 | 순종 |
집필자 | 이왕무 |
폐지 시기 | 1945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모란관상회(牧丹觀賞會)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순종실록부록』 6년 5월 18일, 『순종실록부록』 6년 5월 22일, 『순종실록부록』 16년 5월 18일 |
1907년(융희 1) 순종 황제 즉위 이후 창덕궁의 후원이나 인정전 인근에서 의례적 모임을 가진 뒤 모란을 관람하던 의식.
개설
모란관상회는 일본 황실의 꽃구경 의식을 도입해 창덕궁에서 행해진 새로운 문물제도이다. 1905년(광무 9)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한제국에 통감부를 설치한 뒤 외교권을 박탈하여 고종의 황제권을 축소시켰다. 이어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양위시키고 순종을 제위에 오르게 하면서 황권은 일제에 의해 극도로 제약을 받게 되었다.
이후 일제는 대한제국 황실을 친일화 내지 왜색화시키기 위해 의례와 행사들을 일본 황실의 전례와 전범에 따라 변경시키려 하였다. 서구 유럽 황실을 모방한 일본 황실의 제도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황실의 남성들이 육해군 군복을 착용하는 것이나 여성들이 적십자에서 활동하는 것은 영국 황실에 정착된 제도였다. 궁궐 내 식물원과 동물원, 박물관을 설치해 제국의 위대함과 문명화를 과시하려는 것도 일본 황실이 유럽 식민주의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도입한 제도들이었다. 모란관상회도 그중 하나이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907년 순종의 즉위 이후 통감부는 대한제국 황실을 관리하던 궁내부에 일본인 관료들을 많이 이식시켰는데, 이들은 대한제국 황실에 일본 황실의 각종 제도를 도입했다. 그중 모란관상회 같이 일본 황실에서 거행하던 꽃구경 의식도 도입하였다. 동시에 일제는 식물원과 동물원도 창경궁에 설치하여 황실의 유희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모두 순종의 여가와 황실의 존엄을 위해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조직 및 역할
모란관상회는 순종과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윤씨(尹氏)를 비롯한 대한제국기의 구황족과 조선 귀족, 조선총독부의 총독 및 고등관 이상, 이왕직 고등관 등 식민지 조선의 상위 지배층 대부분이 참석하던 창덕궁의 궁중 행사였다. 예컨대 1913년 5월 18일에는 총독(總督)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정무총감(政務總監)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郞], 총무국장(總務局長)고다마 히데오[兒玉秀雄], 부무관(附武官)야마가타 분조[山縣文藏]와 고노 쓰네키치[河野恒吉], 비서관(祕書官)구와바라 하치시[桑原八司] 등과 그 부인들이 인정전에서 순종을 알현하고 모란관상회를 열었다. 이때 조선 귀족과 이왕직 장관 이하 고등관도 배석하였다(『순종실록부록』 6년 5월 18일). 또한 1913년 5월 22일에는 순종이 조선군사령관안도 사다요시[安東貞美] 이하 부관(副官) 2인, 사단 참모장 및 중추원(中樞院) 서기관장(書記官長)고쿠분 쇼타로[國分象太郞]를 접견한 뒤에 모란관상회를 열어 조선 귀족, 이왕직 장관 이하 고등관과 같이 관람하였다.(『순종실록부록』 6년 5월 22일)
1920년대에는 그 규모가 더 커졌다. 1923년 5월 18일에는 순종이 순정효황후 윤씨와 같이 총독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정무총감아리요시 추이치[有吉忠一], 조선군사령관기쿠치 신노스케[菊池愼之助] 및 친임(親任) 대우를 받는 사람들과 그 부인들을 접견하고 모란 관상을 하였다. 이때에도 종척(宗戚) 귀족(貴族) 및 이왕직 장관 이하 고등관이 함께 참석하였다(『순종실록부록』 16년 5월 18일).
이외에도 창덕궁후원에서는 꽃을 구경하는 관화회(觀花會)가 개최되었다. 1916년 4월 26일 순종은 총독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총독부총무국장 등을 후원에서 접견하고 관화회를 베풀었다.
변천
모란관상회는 1926년 순종이 서거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다만 순종 이후에는 영친왕이 제사의 진행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와 같은 왕실 모임은 열리지 않았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新報)』
- 『일기(日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창덕궁이왕실기(昌德宮李王實記)』
-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 1967.
- 국사편찬위원회, 『대한계년사』, 1971.
- 이태진,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 2000.
- 신명호, 「德壽宮 贊侍室 편찬의 『日記』 자료를 통해본 식민지시대 고종의 일상」, 『장서각』23, 2010.
- 이왕무, 「1910년대 순종의 창덕궁 생활과 행행 연구」, 『조선시대사학보』69, 2014.
- 新城道彦, 『天皇の韓国併合 : 王公族の創設と帝国の葛藤』, 法政大学,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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