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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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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무소위 |
한글표제 | 무소위 |
한자표제 | 武昭衛 |
상위어 | 방리군(坊里軍) |
관련어 | 민군(民軍), 분용위(奮勇衛), 효건위(驍健衛), 충건위(忠建衛), 파로위(破虜衛) |
분야 | 정치/군사·국방/편제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예종 |
집필자 | 김종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무소위(武昭衛)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예종실록』 1년 7월 20일 |
조선시대 도성에 소속된 방리군 중 서부(西部)에서 소집된 민군 조직.
내용
우리나라는 삼국 시기부터 중앙군(中央軍) 이외에 도성(都城)을 지키는 민군(民軍) 으로서 방리군(坊里軍)이 조직되어 있었다. 이들은 도성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소집·편제시켜 만든 군대로 그다지 정예병은 아니었다. 중앙군이 제대로 기능할 때에는 이들은 거의 주목되지 않았으나, 중앙군이 부실할 경우 방리군이 도성을 지키는 데 동원되기도 하였다. 특히 고려말에는 중앙군이 부실하여 방리군이 자주 동원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방리군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세조대에 들어와 방리군의 정비가 논의되었다. 그 후 1469년(예종 1) 국왕은 승정원에 한성 5부 방리군의 정비를 명하고, 이어 어서(御書)를 내리기를, “중부(中部)는 분용위(奮勇衛)로, 동부(東部)는 효건위(驍健衛)로, 서부(西部)는 무소위(武昭衛)로, 남부(南部)는 충건위(忠建衛)로, 북부(北部)는 파로위(破虜衛)로 칭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무소위는 방리군 중 서부에서 소집된 군대임을 알 수 있다.
용례
仍下御書曰 中部稱奮勇衛 東部驍健衛 西部武昭衛 南部忠建衛 北部破虜衛(『예종실록』 1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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