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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24 기준 최신판



소금에 절인 무김치.

개설

소금에 절인 무로 만든 김치인 청저(菁菹)는 조선시대 각종 제사에 제수로 빠지지 않는 음식이었다. 두(豆)라는 나무로 된 제기에 담겨 진설되었으며, 여름철에는 오이김치로 대체되기도 했다.

만드는 법

청저를 만드는 방법은 『조선왕조실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승정원일기』 1741년(영조 17) 4월 8일과 1756년(영조 32) 6월 13일의 기록을 보면, 제사에 쓸 청저는 청근전(菁根田)으로 위전(位田)을 두고, 거기서 난 무를 저장해 두었다가 재료로 썼다. 무를 짭짤한 소금물에 담가 두었다가, 제사 때 꺼내어 임시로 국물을 제거하여 제수로 준비하였던 듯하다.

연원 및 용도

조선시대에 청저, 즉 무김치는 제기(祭器)인 ‘두(豆)’에 담아 올리는 제수였다. 『세종실록』「오례」에 따르면, 청저는 친제사직의(親祭社稷儀), 제사직섭사의(祭社稷攝事儀), 기고사직의(祈告社稷儀), 주현제사직의(州縣祭社稷儀), 친협종묘의(親祫宗廟儀), 협향종묘섭사의(祫享宗廟攝事儀), 사시급납친향종묘의(四時及臘親享宗廟儀), 사시급납향종묘섭사의(四時及臘享宗廟攝事儀), 삭망향종묘의(朔望享宗廟儀), 기고종묘의(祈告宗廟儀), 제중류의(祭中霤儀), 사풍운뇌우산천성황의(祀風雲雷雨山川城隍儀), 사영성의(祀靈星儀), 제악해독의(祭嶽海瀆儀), 제삼각산의(祭三角山儀), 제산천의(祭山川儀), 제목멱의(祭木覓儀), 친향선농의(親享先農儀), 향선농섭사의(享先農攝事儀), 향선잠의(享先蠶儀), 우사의(雩祀儀), 왕세자석전문선왕의(王世子釋奠文宣王儀), 유사석전문선왕의(有司釋奠文宣王儀), 주현석전문선왕의(州縣釋奠文宣王儀), 향조선단군의(享朝鮮檀君儀), 향고려시조의(享高麗始祖儀), 사마조의(祀馬祖儀), 향사한의(享司寒儀) 등을 지낼 때 진설하였던 음식이다. 이 밖에도 예조(禮曹)에서 정한 사후토(祀后土)의 의식에서도 청저를 두에 담아 둘째 줄에 올렸다(『세종실록』 2년 8월 25일).

청저는 1797년(정조 21) 예조가 종묘를 비롯해 각종 제사의 제수 품목을 기록한 『[정사]제물등록([丁巳]祭物謄錄)』의 「종묘십사실오향대제(宗廟十四室五享大祭)」 부분을 보면, 6월부터 9월까지는 청저 대신 과저(瓜菹) 즉 오이김치로 대체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정사]제물등록([丁巳]祭物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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