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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23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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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감주 |
한글표제 | 감주 |
한자표제 | 甘酒 |
동의어 | 감례(甘醴), 예주(醴酒) |
관련어 | 단술, 식혜(食醯), 점감주(粘甘酒), 황감주(黃甘酒)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음식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주영하 |
재료 | 찹쌀[糙米], 멥쌀[粳米], 누룩[麴]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감주(甘酒)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9년 1월 24일, 『문종실록』 2년 9월 1일 |
멥쌀이나 찹쌀의 가루에 누룩을 넣고 담근 단맛이 강한 술, 혹은 멥쌀이나 찹쌀의 가루나 밥에 엿기름을 넣고 삭힌 음료.
개설
감주는 두 가지의 용례가 있다. 하나는 멥쌀이나 찹쌀의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발효시킨 단맛이 강한 술이고, 다른 하나는 멥쌀이나 찹쌀의 가루에 엿기름을 넣어서 삭힌 단맛의 음료수이다. 보통 감주를 식혜나 단술로 번역하는데 용례에 따라서 술인지 음료수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만드는 법
감주 만드는 법을 적은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세조의 어의(御醫)였던 전순의(全循義)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산가요록((山家要錄)』이다. 이 책에는 네 가지의 감주 만드는 법이 나온다.
첫 번째는 음료 감주를 만드는 법이다. 주재료는 ‘쌀 한 말 또는 두 말’이다. 음료 감주에는 반드시 엿기름이 필요하다. 엿기름 만드는 법은 “겉보리를 깨끗이 씻어 그릇에 담고 솜옷을 덮어 따뜻한 온돌 위에 놓아, 싹이 생쌀만큼의 길이로 돋을 때까지 두었다가 볕에 바짝 말려 절구에 찧어 껍질을 없애고 가루를 만들어 체에 친다.” 그다음에 “멥쌀 한 말을 깨끗이 씻어 곱게 가루로 내어 체에 내리고 물을 팔팔 끓여 죽을 쑤어 준비해 둔 엿기름 세 수저를 고루 섞어 항아리에 담는다.” 계절에 따라 익히는 방법이 달랐다. “추우면 따뜻한 곳에 두고 더우면 찬 곳에 두어 하룻밤을 지내고 먹는다.”
두 번째는 술 감주를 만드는 법이다. “찹쌀 한 말을 가루로 내어 구멍 떡을 만들고 속까지 익도록 삶아서 식혀 누룩가루 두 되를 섞어 항아리에 넣어 둔다.” 누룩을 넣었기 때문에 단맛의 술이 만들어진다.
세 번째는 누룩을 사용하지 않고 이미 있는 밑술에 넣어서 익히는 방법이다. “봄가을이면 7일, 여름이면 5일 뒤에 찹쌀과 멥쌀 두 말을 물에 하루 동안 담갔다가 온 채로 쪄서 식혀 누룩 없이 밑술에 넣어 익으면 사용한다.”
네 번째 방법 역시 술 감주이다. “찹쌀과 멥쌀 두 되를 가루로 내어 죽을 쑤어 식기 전에 누룩 두 홉과 찬물 한 홉을 합하여 버무려 항아리에 담은 후 베 보자기로 덮어 둔다. 오늘 빚으면 다음 날에는 쓸 수 있으며, 분량은 이대로 미루어 하면 된다.”고 했다. 『산가요록』의 감주 만드는 법은 이후 조선시대 요리책에서 반복되어 기록되었다.
이와 같이 감주를 만드는 방법은 주재료를 가루 내어 엿기름에 버무리는 법, 구멍떡을 만들어 누룩가루와 버무리는 법, 죽을 쑤어 누룩을 넣는 법, 백설기를 만들어서 누룩을 넣는 법 그리고 고두밥을 지어 엿기름을 넣는 방법 등이 있다. 여러 가지의 감주 만드는 법은 『주방문(酒方文)』, 『주방(酒方)』,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농정회요(農政會要)』,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술 만드는 법』,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등의 문헌에 나온다.
연원 및 용도
중국의 『한서(漢書)』에는 목생(穆生)이 술을 즐겨 마시지 않자 초원왕(楚元王)이 술자리에 예(醴)를 준비해 두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한서』에 주석을 붙인 안사고(顔師古)는 “예는 감주이다. 적은 양의 누룩에 많은 양의 쌀을 섞어 하룻밤 재운 다음에 완전히 익지 않도록 하여 만든다.”고 했다. 이로 미루어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누룩을 조금만 넣고 짧은 시간 동안 발효시킨 음료를 감주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감주는 식혜 만들 듯하여 짜서 마시면 맛이 달기로 술 먹는 사람과 노인이 마시나니라.”고 했다.
감주를 다른 말로 예주(醴酒)라고도 했다. 당나라 현응(玄應)이 찬술한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서는 “예는 단맛이다. 물이 달아도 예주라고 말한다.”고 했다. 술처럼 발효가 되지만 알코올 성분이 약하고 그 대신에 단맛이 강한 음료도 감주라고 불렀다. 서유구(徐有榘)는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정조지(鼎俎志)」 ‘온배지류(轀醅之類)’의 ‘예류(醴類)’에서 감주를 다루었다.
세종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정사를 보고, 2품 이상을 불러서 술자리를 베풀면서 평소에 차가운 술을 마셨지만, 속이 편치 못하여 감주를 마신다고 했다(『세종실록』 9년 1월 24일).
감주는 술과 음악을 즐긴다는 뜻의 ‘감주기음(甘酒嗜音)’에 대한 비판에서도 자주 나온다(『문종실록』 2년 9월 1일). ‘감주기음’은 『상서(尙書)』「오자지가(五子之歌)」의 “안에서는 여색(女色)에 빠지고, 밖에서는 수렵(狩獵)에 탐닉하고, 술을 즐겨 마시고 음악을 좋아하고, 높은 가옥과 화려한 원장(垣墻)을 세우다.”에서 나온 말로 올바른 군주의 모습이 아님을 비유할 때 자주 쓰였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금주령이 내려지면 제사에서 술 대신에 감주를 올렸다. 다만 문헌에서는 감주라고 하지 않고 예주라고 적었다. 가령 영조는 금주령을 내린 후에 “묘사(廟社)·능침(陵寢)·궁원(宮園)·묘묘(廟墓)의 모든 곳에 제사를 지낼 적에 모두 예주를 사용하되 이미 빚은 술은 쓰도록 분부하라.”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사가(私家)에서도 술 대신에 감주를 올리는 집이 생겨났다. 금주령이 해제된 이후 술과 함께 감주를 올리는 문중도 생기면서 감주를 ‘식혜’ 혹은 ‘단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참고문헌
- 『농정회요(農政會要)』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산가요록(山家要錄)』
- 『상서(尙書)』
- 『술 만드는 법』
-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
-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 『주방문(酒方文)』
- 『주방(酒方)』
-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 『증보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增補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 『한서(漢書)』
- 박록담·술방사람들, 『우리술 103가지:전통명주 빚는 법』, 오상, 2002.
- 한복려 엮음, 『다시 보고 배우는 산가요록』, (사)궁중음식연구원,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