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병(元宵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XML 가져오기) |
(차이 없음)
|
2017년 12월 10일 (일) 01:23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원소병 |
한글표제 | 원소병 |
한자표제 | 元宵餠 |
동의어 | 수원(水圓), 탕원(湯圓) |
관련어 | 원소(元宵), 원소절(原宵節)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음식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주영하 |
재료 | 찹쌀가루, 사탕, 대추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원소병(元宵餠)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18년 2월 22일 |
찹쌀가루에 사탕물을 넣고 찐 대추를 소로 넣어 만든 음식.
개설
찹쌀가루에 사탕물을 넣고 찐 대추를 소로 넣어 만든 음식으로 정월 대보름에 중국 북경에서 먹었다. 원소(元宵)는 중국에서 정월 대보름의 저녁을 뜻하는데, 보름달의 모습을 두고 원소라고도 부른다. 주로 북경에 사신으로 간 관리들이 황제로부터 원소병(元宵餠)을 대접받은 일을 보고하거나 기록한 글에 나온다.
만드는 법
조선시대 요리책에서 원소병 만드는 법은 빙허각이씨가 1800년경에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나온다. “찹쌀가루를 깁체에 쳐 사탕물에 반죽하여 대추 쪄 거른 소 넣어 대소를 큰 경단만치 둥글게 비벼서 사탕물을 달게 하여 삶아 물 수단같이 띄워 쓰니 이 떡이 북경에서 원소에 만들어 먹는 고로 원소병이라.”고 했다.
연행록에 원소병의 모양을 묘사한 글이 있다. 홍대용(洪大容)은 『담헌서(湛軒書)』에서 “원소병이라고 하는 것은 밀가루를 둥글게 새알처럼 뭉친 것인데, 속에 설탕이 들어 있고 끓여서 먹는 것으로 가장 먹을 만하였다.”고 적었다. 1804년(순조 4) 동지사로 북경을 다녀온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저자가 쓴 『계산기정(薊山紀程)』에서는 “흰 가루로 둥그스름하게 만들고 설탕가루로 섞어서 끓인 것을 원소병이라 한다.”고 적었다. 1832년(순조 32)~1833년(순조 33)에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 북경을 다녀온 김경선(金景善)의 『연원직지(燕轅直指)』에서는 “원소병은 백설기 가루로 경단을 만들어 설탕 가루를 묻힌 것이다.”라고 했다.
연원 및 용도
중국에서 원소절(原宵節)의 유래는 한나라 때로 추정된다. 한(漢) 무제(文帝)는 여씨(呂氏)의 반란을 평정한 날이 정월 대보름이었기 때문에 황제가 된 후에 매년 이때 궁궐에서 나와 백성들과 즐겁게 지냈다. 둥근 달을 보고 ‘원소’라고 불렀고, 달 모양의 떡을 만들어 먹게 되면서 원소병이 생겨났다. 중국 남방에서는 원소병을 탕원(湯圓) 혹은 수원(水圓)이라고 불렀다. 정월 대보름을 축하하기 위해 먹었던 명절음식이다.
정조 때 청나라에 동지정사(冬至正使)로 갔던 황인점(黃仁點)이 귀국 후 보고하기를 정월 13일 밤에 황제가 합문 앞으로 나오자 여러 가지 잡기와 등불놀이가 진행되었고, 내무부(內務府)에서 과일과 함께 원소병을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정조실록』 18년 2월 22일).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서유구(徐有榘)는 원소병에 대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자신의 책 『옹희잡지(饔饎雜志)』를 인용하여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잘 만들어 먹는다.”고 적었다. 아마도 19세기 초반 이후 청나라의 북경을 다녀온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정월 대보름에 원소병을 만들어 먹는 일이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계산기정(薊山紀程)』
- 『규합총서(閨閤叢書)』
- 『담헌서(湛軒書)』
- 『연원직지(燕轅直指)』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喬繼堂, 『中國歲時禮俗』, 天津人民出版社,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