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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18 기준 최신판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식물.

개설

조선시대에 오이는 5월에 종묘 등에 천신(薦新)되기도 하였으나, 의례용보다는 무와 함께 가장 보편적으로 식용하던 채소이다. 청오이는 물론 황과(黃瓜)라고 하는 늙은 오이, 즉 노각도 식용하였다. 여름철에는 오이를 생으로 먹기도 했지만, 김치·나물·찜·볶음 등 다양한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다. 그 밖에 소금·술지게미·식초 등에 절여서 저장하는 방법이 발달하였다.

원산지 및 유통

오이는 인도가 원산지로 중국을 거쳐 한국에는 10세기 무렵 들어왔는데, 조선시대에는 널리 퍼져 비교적 구하기 쉬운 채소였다. 왕실에서 쓰는 오이는 사포서(司圃署)에서 담당하여 조달하였고, 따로 특정 지방에서 공물로 진상하지는 않았다.

연원 및 용도

『세종실록』 「오례의」 천신종묘의(薦新宗廟儀)와 『종묘의궤(宗廟儀軌)』의 월별 천신을 보면, 오이는 5월에 두(豆)에 담아 올리는 품목이었다. 종묘 이외에도 5월에는 경모궁과 산릉 등에 오이를 올렸다.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에 따르면, 사포서에서 마련한 오이를 5월 초하루에 변(籩)에 담아 40개를 천신하였다. 천신 의례는 소홀히 할 수 없는 의례여서, 산릉에 봉진해야 할 오이를 때맞춰 천신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포서 제조(提調)와 해당 관리가 관직을 삭직 내지 파직당한 일도 있다(『순조실록』 2년 5월 23일).

조선시대에 오이를 재료로 하는 음식을 만드는 법은 『산림경제(山林經濟)』를 비롯한 유서류와 여러 조리서에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오이를 저장하는 방법은 기본이고, 오이를 주재료로 한 오이김치·오이소박이 등과 같은 김치류, 오이지·오이지게미지·오이초절이·오이장아찌·오이숙장아찌·오이짠지 등과 같은 절임류, 오이찜·오이선·오이생채·오이나물과 같은 반찬류 등이 있다. 대체로 바로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보다는 저장성이 높은 조리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조리법 가운데 현재까지도 여름 반찬으로 즐겨 먹는 오이지를 만드는 법이 눈에 띈다. 특히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용인오이지 만드는 법[龍仁淡瓜葅法]’ 『산림경제』, 『규합총서(閨閤叢書)』, 『부인필지(婦人必知)』에서 소개하였다. 이는 내용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1921년 출판된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까지 이어진다.

참고문헌

  •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
  • 『규합총서(閨閤叢書)』
  • 『부인필지(婦人必知)』
  • 『산림경제(山林經濟)』
  •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
  • 『종묘의궤(宗廟儀軌)』
  • 한국식품과학회, 『식품과학기술대사전』, 광일문화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