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砂糖)"의 두 판 사이의 차이
(XML 가져오기) |
(차이 없음)
|
2017년 12월 10일 (일) 01:18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사당 |
한글표제 | 사당 |
한자표제 | 砂糖 |
대역어 | 사탕 |
동의어 | 당병(糖餠), 당상(糖霜), 빙당(氷糖), 설당(雪糖), 설당(屑糖), 표당(豹糖) |
관련어 | 흑당(黑糖)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식재료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주영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사당(砂糖)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3년 11월 6일, 『성종실록』 8년 6월 6일, 『선조실록』 8년 2월 25일 |
사탕수수의 즙을 응고하여 만든 음식.
개설
사탕수수의 즙에 석회가루 따위를 넣고 응고시킨 단맛이 나는 음식이다. 모래 덩어리처럼 곱다고 하여 사탕[沙糖]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다른 말로 당병(糖餠), 당상(糖霜), 표당(豹糖), 빙당(氷糖)이 있다. 흑당(黑糖)은 정백제를 넣기 전의 사탕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백제를 넣으면 흰색의 가루가 되기 때문에 설당(雪糖) 혹은 설당(屑糖)이라고 불렀다. 사탕수수 자체가 한반도에서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일본이나 유구국에서 진상한 물품 중에 사탕이 들어 있었다. 중국에 간 사신들이 그곳에서 사탕을 먹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조선 왕실에서는 약제로 사용했다.
원산지 및 유통
사탕은 사탕수수의 즙으로 만든다. 사탕수수는 본래 인도의 갠지스 강 유역이 원산지로 알려진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높이는 품종에 따라서 2~4미터에 이르며, 모양이 수수와 비슷하지만 사탕이 나온다 하여 사탕수수라고 부른다. 사탕은 줄기에서 짠 즙으로 만든다. 줄기가 딱딱하기 때문에 먼저 껍질을 벗겨내야 한다. 줄기에서 즙을 짜내기 위해서는 별도의 도구가 필요하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거운 돌을 두 겹으로 쌓고 그 사이에 줄기를 넣은 다음 손으로 잡아당기는 것이다. 그러면 줄기가 짓이겨지면서 즙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즙을 내면 노동력을 투자해도 생산량은 별로 많지 않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윤차(輪車)다. 처음에는 나무로 원통을 만들고 그 원통 끝에 바퀴를 조각해서 만들었다. 이후 쇠로 톱니바퀴를 만들어 붙였다. 원통을 두 개 만들어 톱니바퀴를 옆으로 맞춘다. 그러면 원통의 위에 있는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고, 아래의 원통도 두 개가 서로 맞물린다. 두 개 중 하나의 톱니바퀴 위에 긴 막대기를 박고 사람이 돌린다. 그러면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아래의 원통도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 그 틈에 사탕수수의 줄기를 넣으면 밑으로 즙이 나온다. 처음에는 두 개의 원통을 사용했지만, 보다 효율적으로 즙을 짜내기 위해서 세 개의 원통을 서로 맞물린 후, 가운데 원통을 사람이나 말 혹은 소가 원형으로 돌리도록 했다. 그러나 나무로 만든 톱니바퀴는 쉽게 부셔지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 개선한 것이 바로 금륜차(金輪車)다. 줄기를 압착하는 원통과 톱니바퀴를 쇠로 만들었다. 더욱이 세 개의 금륜차 원통이 맞물려 돌아가는 두 군데에 사탕수수의 줄기를 넣으면 보다 효율적으로 즙을 짜낼 수 있었다. 이렇게 즙을 받으면 그것을 큰 냄비에 넣고 약 두 시간 정도 약한 불에서 끓인다. 끓인 즙에 석회가루를 넣고 잘 저으면 즙이 점차 응고하기 시작한다. 이 즙이 완전히 응고하기 전에 긴 사각형의 틀에 붓는다. 칼로 조각을 낼 부분에 금을 그어 두면, 굳은 후에 손쉽게 자를 수 있다. 색깔은 검은색이다. 보통 말하는 흑사탕이 바로 사탕이다. 여기에 정백제를 넣고 가루로 분쇄하면 설탕이 된다.
연원 및 용도
세종 때는 일본국전구주총관(前九州摠管)원도진(源道鎭)이 사탕 100근을 조공으로 보내왔으며(『세종실록』 3년 11월 6일), 성종 때는 유구국에서 사탕 100근을 조공으로 보내왔다(『성종실록』 8년 6월 6일). 이렇게 확보한 사탕을 왕실에서는 약제의 하나로 사용했다. 선조 때 약방에서 피곤할 때 생맥산(生脈散)에 사탕을 가미하여 차(茶)처럼 마시기를 권유했다(『선조실록』 8년 2월 25일). 이 모두 사탕이 꿀보다 단맛이 진하면서 귀했기 때문이다. 이규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종자전당변증설(種蔗煎糖辨證說)」에서 “요사이 해내외에서 사탕수수를 심거나 사탕을 달이지 않는 자가 없고, 이것을 매일 언제나 먹는다. 심지어 여러 곳으로 사행을 떠나는 자들은 교통이 험악하거나 평탄함을 따지지 않고 서로 교역을 한다. 세상에서 비싼 재물이지만, 유독 나만 없다.”고 했다. 또 “또 흑당(黑糖)도 있다. 근래 서양의 배가 우리나라 동해 연안에 표류하여 배를 수색하여 검사해 보니, 배에 흑당으로 가루를 낸 것을 많이 싣고 있었다고 한다. 맛은 백당보다 좋다고 전해진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사탕을 ‘점입가경의 맛[漸入佳境之味]’이라고 했다.
참고문헌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주영하, 「조선을 녹인 점입가경의 단맛:달콤한 꿀맛, 더 달콤한 설탕 맛」, 『18세기의 맛』, 문학동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