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脾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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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17 기준 최신판



소의 천엽(千葉)으로 두(豆)에 담는 일종의 제물.

개설

‘비(脾)’는 소의 지라 또는 밥통을 뜻한다. ‘석(析)’은 소나 양 따위의 반추위에서 제3위(胃)인 천엽을 뜻한다. 천엽은 처녑으로 쓰기도 한다. 모든 짐승의 위장을 이르기도 한다. 조선의 국가 오례 중 길례 의식을 거행할 때, 이를 하나의 두에 담아 놓는다.

연원 및 용도

조선에서는 오향대제(五享大祭)에 비석으로 소의 지라 또는 천엽을 올렸다. 『주례(周禮)』에서 살펴보면, 비석은 소의 백엽(百葉)이라고 하였다.

『오례의(五禮儀)』 길례 의식 중 친제 사직의, 제사직 섭사의, 친협 종묘의, 협향종묘 섭사의, 사시급납 친향 종묘의, 사시급납 향종묘 섭사의, 사풍운뇌우 산천 성황의, 제악해독의, 제삼각산의, 친향 선농의, 향선잠의, 우사의, 왕세자 석전 문선왕의, 유사 석전 문선왕의, 향조선 단군의, 향고려 시조의 등의 진설에 모두 포함되고 있었다.

제물을 진설할 때 두에 담아 셋째 줄에 진설하였는데, 어해를 앞에 놓고 비석·돈박(豚拍)을 놓았다. 세종대에는 종묘의 대향(大享)에 올리는 삼식(糝食)과 비석, 돈박의 삶는 절차가 서례(序例)와 같지 않은 것이 많으므로 고문(古文)을 상고하여 모두 서례에 의거하여 공진(供進)하도록 하였다(『세종실록』 17년 9월 15일).

참고문헌

  •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 이성우, 『동아시아 속의 고대 한국식생활사연구』, 향문사, 1992.
  • 하갑청, 『조선왕조의 제사』, 문화재관리국, 1967.
  • 한복진, 『조선시대 궁중의 식생활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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