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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17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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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홍합 |
한글표제 | 홍합 |
한자표제 | 紅蛤 |
대역어 | 담채 |
동의어 | 각채(殼菜), (참)담치, 동해부인, 이패(貽貝), 해폐(海蜌)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식재료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양미경 |
생산지 | 우리나라 바다 전역 |
수확시기 | 늦겨울~초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홍합(紅蛤)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성종실록』 10년 9월 18일 |
홍합과에 속하는 바닷조개.
개설
담채(淡菜) 혹은 담치라고 한다. 한반도 바다 전역에서 생산되며, 겨울철에는 생홍합을, 봄철에는 말린 홍합(紅蛤)을 주로 먹었다. 홍합을 이용한 음식으로는 죽·미음·찜·조림·볶음·초·전·젓갈·식해 등이 있다.
원산지 및 유통
허균(許筠)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동해와 남해에서 모두 홍합이 나지만, 남해의 것이 조금 크다고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을 종합해 볼 때, 한반도의 바다 전역에서 홍합이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겨울에 채취한 홍합은 생으로 사용하였고, 봄에 채취한 것은 말려서 건제품으로 유통하였다.
광복 후 홍합 양식에 성공하여 남해안 일대에서 바닥양식으로 홍합을 생산하고 있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뉴질랜드 등지에서 생홍합을, 중국에서 건홍합을 주로 수입하고 있다.
연원 및 용도
홍합은 패류의 일종으로, 껍데기 겉면은 흑색 혹은 갈색이고, 내면은 붉은색의 진주광택을 띤다. 껍데기 길이는 약 130~140㎜, 높이는 약 80㎜로 긴 달걀 모양이다. 배 테두리 전방에서 나오는 발로 암초에 부착하여 생활하며, 무리를 지어 서식한다.
홍합이라는 이름은 살이 붉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해산물과 달리 맛이 짜지 않고 싱겁기 때문에 담채라고도 부른다. 허균은 중국에서는 이를 동해부인으로 부른다고 소개하였다. 홍합은 늦겨울에서 초봄이 제철이며, 5~9월에는 삭시토닌이라는 독소가 있으므로 먹지 않는 것이 좋다. 홍만선(洪萬選)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살이 흰 것은 암컷으로 맛이 좋고, 붉은 것은 수컷으로 맛이 덜하다고 하였다.
홍합은 생홍합과 건홍합으로 유통되었는데, 건홍합은 중국 왕실에 진헌하거나 조선에 온 사신에게 선물로 보냈다(『성종실록』 10년 9월 18일). 조선의 선비들 사이에서 건홍합은 서로 부담 없이 주고받는 선물로 인식되어 편지를 보내는 인편(人便)에 함께 동봉하여 보내곤 했다. 반면,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생홍합은 주로 가내에서 조리용으로 쓰였다. 이응희(李應禧)는 『옥담사집(玉潭私集)』에서 겨울에 채취하면 반찬으로 좋고 봄에 말리면 잔치음식으로 쓰인다고 하면서, 홍합은 비록 생선과 게보다 못하지만 좋은 품질은 비길 데가 없다고 하였다.
홍합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만큼 죽·미음·찜·조림·볶음·초·전·젓갈·식해 등 다양한 음식으로 만들어졌다. 홍합살 자체에 단맛이 있어서 생홍합을 볶아서 국을 끓이면 감칠맛을 살려 주고, 쪄서 말린 건홍합의 경우는 제사상의 탕감이나 조림용으로 주로 사용하였다. 또한 홍합은 자양(滋養), 보간(補肝) 등의 효능이 있어서 죽이나 미음의 형태로 병자나 약자의 보양식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일성록』에는 정조가 홍합미음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조리법이 자세히 기술되지 않아서 정확한 내용을 알 수는 없다. 조선말엽에 편찬된 『시의전서(是議全書)』를 통해 그 조리법의 대강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시의전서』에서는 이 음식을 삼합미음(三合米飮)이라고 하였는데, 홍합·해삼·소고기가 주재료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재료를 푹 곤 다음, 찹쌀 1되를 넣어 미음으로 끓여 체로 거른다. 그런 다음, 3년 장을 타서 먹으면 노인·아이·병자에게 좋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 『일성록(日省錄)』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 『시의전서(是議全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옥담사집(玉潭私集)』
- 『자산어보(玆山魚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