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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37 기준 최신판



중국(中國) 당(唐)나라 >순종(順宗) 대에 사용한 연호(805년).

개설

중국 당나라의 제 10대 황제인 순종이 사용한 연호이다(805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주로 노론계(老論系) 인사로,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죽음을 당한 이희지(李熹之)와 관련하여 영정(永貞) 연호가 많이 등장한다. 이희지가 주로 활동하던 경종(景宗) 때는 노론과 소론(少論)의 대립이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소론은 이희지가 약물로 경종을 시해하기 위하여 궁녀에게 금전을 주었으며, 임금을 비방하는 노래를 지었다고 무고(誣告)하였다. 그리고 이 무고로 결국 이희지는 죽음을 당하였다.

이때 이희지가 만든 노래가 ‘속영정행시(續永貞行詩)’인데, 여기에 영정 연호가 등장한다. ‘영정행’은 임금이 무능하여 권세를 아랫 사람에게 의탁한 것을 비유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에 대한 기원은 영정 연호를 사용하던 때에서 찾을 수 있다. 영정 연호를 사용하던 순종은 중풍을 앓아 벙어리가 되면서 궁궐에서 은거 생활을 하였다. 대신 정치는 환관(宦官)이충언(李忠言)과 소용우씨(昭容牛氏)가 담당하였는데, 신하 한유(韓愈)는 이것을 비판하며 영정행이라는 시를 썼다. 즉 소론에서는 이희지가 ‘속영정행시’를 지어 경종 연간의 일을 비판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조정에서 이에 대하여 끊임없이 논쟁을 하면서 영정 연호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계속 등장한다.

참고문헌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구당서(舊唐書)』
  • 『신당서(新唐書)』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