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아대종(靑畵兒大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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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26 기준 최신판



청화백자로 제작된 술을 마시는 음주기의 일종.

개설

청화아대종(靑畫兒大鍾)은 1456년(세조 2)에 우의정이사철(李思哲)이 오랫동안 병으로 누워있다는 얘기를 들은 세조가 술, 음식과 함께 하사한 청화백자 주기(酒器) 중 하나이다(『세조실록』 2년 7월 28일).

연원 및 변천

조선초기에 주기는 왕이 덕과 은혜를 베풀거나 부모에게 극진한 효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왕이 친인척이나 성균관, 측근 신하들에게 주기를 하사하는 예가 많이 보인다. 세조 연간에는 1456년, 1461년(세조 7), 1462년(세조 8)에 연속으로 측근 신하들에게 술과 함께 청화아대종이나 화종(畵鍾)과 같은 청화백자 주기를 하사하였다. 1456년에는 병으로 누워있는 이사철에게 청화아대종을 보내주었고, 1461년에는 겉면에는 덩굴에 박이 매달려있는 형상을 그리고, 안면에는 세조가 친히 지은 시를 써서 특별하게 제작한 화종을 신숙주에게 하사하였다(『세조실록』 7년 6월 4일). 1462년에는 활쏘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신하들에게 화종을 하사였다(『세조실록』 8년 11월 7일). 세조가 청화백자 주기를 하사한 것은 군신 간의 정을 표현하고 왕의 덕과 은혜를 베푼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형태

종(鍾)의 형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명나라 초기 번왕인 양장왕(梁莊王)의 무덤에서 출토된 「백자청화 용문 고족배(高足杯)」를 덮고 있던 금제 뚜껑에서 고족배를 종이라고 지칭한 명문이 확인되었다. 이로 미루어 조선시대의 종은 당시 명나라 사신들이 가져온 높은 굽다리 위에 잔 형태의 그릇이 놓인 고족배를 지칭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 방병선, 『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5.
  • 김윤정, 「朝鮮初 酒器의 조형 변화와 원인」, 『강좌미술사』 37호,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1.
  • 윤효정, 「朝鮮 15ㆍ16세기 靑畵白磁의 製作과 使用―문헌자료와 요지출토품을 중심으로―」, 『美術史學硏究』 250ㆍ251호, 한국미술사학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