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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25 기준 최신판



보석남유(寶石藍釉)라는 유약을 시유하여 짙은 청색을 띤 자기에 금으로 문양을 장식한 술 주전자.

개설

청묘금주주(靑苗金酒注)는 1450년(문종 즉위)에 명나라 사신 정선(鄭善)이 바친 명대 자기 중 하나이다. 청묘금주주는 그릇의 품종과 기종을 알 수 있는 명칭이며, 이를 통해 조형적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백자에 보석남유라고 하는 유약을 전체 면에 시유하여 짙은 청색을 띠며, 청색 유약 위에 금으로 문양을 그려서 장식한 자기이다.

연원 및 변천

주주(酒注)는 술을 따르는 짐주기(斟酒器)의 일종이다. 주기(酒器)는 단순하게 술을 따르고 담는 용기가 아니라 군왕의 덕과 은혜를 상징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국가 간의 교류나 군신(君臣)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선물로 이용되었다. 1450년에 명나라 사신 윤봉(尹鳳)과 정선이 조선 왕실에 바친 명대 자기에도 종(鍾), 잔과 받침[臺盞], 주주 등 주기 종류가 대부분이다(『문종실록』 즉위년 8월 6일). 특히 청묘금주주는 ‘청묘금(靑苗金)’이라는 명칭에서 보석남유를 시유하여 짙은 청색을 띤 유면 위에 금으로 문양을 장식한 자기임을 알 수 있다. 금을 이용한 장식 기법은 명나라 이전인 송·원대 자기뿐만 아니라 고려청자에서도 사용된 예가 기록과 실물로 전해진다. 송나라 주밀(周密)의 『지아당잡초(志雅堂雜鈔)』「보기(寶器)」에 정요 자기에 금으로 문양을 그리는 방법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고려사(高麗史)』에도 원나라 황실에 바친 화금자기(畵金磁器)나 금화옹기(金畵甕器)와 같이 금으로 문양을 그린 청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보석남유에 금채(金彩)를 장식한 예는 중국 하북성(河北省) 보정시(保定市) 영화로(永華路)에서 출토된 두 점의 원대 자기에서 확인된다. 명나라 황실용 자기를 생산했던 경덕진 주산(珠山) 관요(官窯)에서도 코발트 안료를 이용한 보석남유를 시유하여 짙은 청색을 띤 자기들이 제작되었고, 금채 장식을 사용한 예들이 확인된다. 자기에 금으로 장식하는 것은 완성된 자기의 유면 위에 금으로 문양을 그리고 낮은 온도로 한 번 더 번조한 것으로 보인다. 1450년에 명나라 사신이 문종에게 바친 자기 중에 순청주주(純靑酒注)도 확인되는데, 이것은 장식 무늬가 없는 청자 주자로 여겨진다.

형태

주주라는 그릇은 손잡이와 주구(注口)가 있는 주전자와 같은 형상으로 추정된다. 현재 알려진 주주 중에 시기가 더 이전 시기로 올라가는 예는 중국 서안(西安)에 있는 당대 교장(窖藏)에서 출토된 은제 주자이다. 입지름이 비교적 넓고 짧은 목과 풍만한 몸체에 손잡이와 출수구가 부착된 형태로, 바닥에 “선휘(宣徽) 주방(酒房)에서 872년(당 함통 13)에 별도로 주주 하나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음각되어 있다. 명나라 초기인 1388년(명 홍무 21)에 출판된 조소(曹昭)의 『격고요론(格古要論)』「고요기론(古窯器論)」에는 “옛 사람들은 탕병(湯甁)과 주주를 사용하고 호(壺), 병(甁)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여, 주주가 주로 당·송대에 사용된 기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명대에 제작된 자기 중에 손잡이와 주구가 달린 주자 형태의 그릇을 주주라고 지칭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격고요론(格古要論)』
  • 방병선, 『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5.
  • 김윤정, 「朝鮮初 酒器의 조형 변화와 원인」, 『강좌미술사』 37호,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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