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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25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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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신주 |
한글표제 | 신주 |
한자표제 | 神主 |
동의어 | 사판(祠版), 신위판(神位版), 위판(位版), 위패(位牌) |
관련어 | 목주(木主), 연주(練主), 우주(虞主) |
분야 | 생활·풍속/가례/제례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중국,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임민혁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신주(神主) |
조상의 칭호를 써넣어 혼령이 깃들도록 한 나무패.
개설
신주는 육신이 땅으로 돌아가고 남은 혼령이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효자가 조상의 혼령을 안정시켜 드리기 위해 만들었다. 따라서 시신을 매장하고 난 직후 신주에 글씨를 쓰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신령이 깃든다고 생각했다. 위패(位牌), 위판(位版), 신위판(神位版) 등으로도 불린다.
신주의 종류에는 우주(虞主)와 연주(練主), 위판(位版)이 있다. 왕의 경우에는 연주를 종묘에 모시고 동시에 궁궐 내에 설치된 사당에 별도로 신주를 모시니, 이것이 위판이다. 따라서 사서인은 위판이 따로 없다. 신주는 제주(題主)하기 전에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발인 때 이를 모시고 묘소로 간다. 국상에서는 현궁을 닫자마자 길유궁 안에서 상주(桑主)를 꺼내어 향탕(香湯)으로 목욕시키고 수건으로 닦은 후에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그 위에 글씨를 썼다. 이때에는 ‘모호대왕(某號大王)’이라 쓴다. 이어서 전제(奠祭)를 올리고, 모시고 돌아와 혼전에 봉안하였는데, 이것이 우주이다.
우주는 훙서한 국왕의 첫 번째 기일인 연제(練祭) 때를 맞아 운명을 다하게 된다. 이때 다시 쓴 신주를 연주라고 한다. 왕의 혼령은 우주에서 연주로 옮겨 깃들게 되는 것이다. 연주는 연제 전일에 만들어놓은 위판에 제주한 후 혼전에 봉안하였다가, 담제(禫祭) 후 종묘의 감실에 봉안하였다.
위판은 문소전과 같이, 원묘에 모시는 신주이다. 원묘는 왕의 사대 조상을 모신 사당으로서, 종묘와는 별도로 궁궐 내에 설치하였다.
연원 및 변천
신주는 효자가 어버이를 장사지낸 후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어 나무로 신주를 세우고 제사를 지낸 것에서 유래되었다. 『오경이의(五經異義)』를 보면, 이 신주를 목주(木主)라 하고, 죽은 사람의 이름을 쓴 것을 사판(祠版)이라 한다고 했다.
중국 주나라 무왕이 주(紂)를 토벌할 때 그의 부친의 신주를 수레에 모시고 다닌 것이 신주의 시초이다. 그 후에도 천자는 순수할 때에 항상 신주를 모시고 다녔다고 한다.
형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보면, 우주는 뽕나무, 연주는 밤나무를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 우주는 길이 1척, 방 5촌이다. 상정(上頂)은 지름이 1촌 8분이며, 네 모서리를 각각 1촌 1분씩 깎고 네 구석은 각각 1분씩 깎는다. 상하사방에는 구멍을 통하게 했는데, 지름이 9분이다. 연주의 제도도 이와 같다. 위판은 밤나무로 만든다. 형태와 규격이 모두 연주와 다르다. 의궤를 사용하지 않으며, 복건(覆巾) 또한 없다.
신주를 넣어 두는 통은 내궤(內匱)와 외궤로 구성되어 있다. 궤에는 잣나무판으로 만든 대(臺)가 있다.
사서인의 신주는 밤나무를 쓰는데, 규격과 형태는 『주자가례』에 자세히 나와 있다. 장사를 지낸 후에 제주하는데, 아버지는 분면에 ‘황고모관봉시부군신주(皇考某官封諡府君神主)’라 쓴다고 했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오경이의(五經異義)』
- 주희 저·임민혁 옮김, 『주자가례』, 예문서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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