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울루목(神茶鬱壘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XML 가져오기) |
(차이 없음)
|
2017년 12월 10일 (일) 00:24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신도울루목 |
한글표제 | 신도울루목 |
한자표제 | 神茶鬱壘木 |
관련어 | 도경(桃梗), 도봉(桃棒), 도부(桃符), 도판(桃板), 문배(門排), 문신(門神) |
분야 | 생활·풍속/풍속/행사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중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최진아 |
용도 | 축귀(逐鬼) |
재질 | 복숭아나무[桃]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신도울루목(神茶鬱壘木)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현종실록』 10년 2월 13일, 『숙종실록』 12년 11월 18일, 『성종실록』 10년 6월 5일 |
귀신을 쫓는 신으로 알려진 신도와 울루의 그림이나 글씨를 새겨 놓은 나무.
개설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도(神茶)·울루(鬱壘)는 문신(門神)으로 신앙된다. 재료로는 복숭아나무[桃]를 사용하며, 부적의 기능을 지녀 도부(桃符) 혹은 도판(桃板)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와 유사한 것으로 도봉(桃棒)·도경(桃梗)이 있다. 신도·울루를 복숭아나무에 새겨 넣은 상징물은 악령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나례의식에 사용하거나 새해 첫날[元日] 혹은 입춘(立春)에 대문 밖에 걸어둔다.
연원 및 변천
신도와 울루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그 기원은 중국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황제(黃帝) 때부터 시작되므로 그 역사가 대략 기원전 27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위서(類書)』에 따르면, 황제 시절에 신도와 울루라는 형제가 귀신을 죽이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후세 사람이 바다 가운데의 도삭산(度朔山) 방면에 이르러 보니, 큰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3,000리에 걸쳐 있었다. 그 아래 신도와 울루 이 두 신(神)이 있었는데, 나란히 풀로 엮은 새끼를 쥐고서 상서롭지 못한 것들을 잡아 묶고 있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섣달그믐날 도부를 만들어 문에 붙이고, 아울러 문에 신상을 그려 넣고 이를 문신(門神)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이는 문배(門排) 혹은 춘련(春聯)의 기능을 한다.
복숭아나무를 이용해 부적이나 도장을 만들면 악귀를 쫓는 효과가 있다고 여겨져 왔다. 복숭아나무에 신도·울루의 신상을 그려 넣었을 경우, 그들이 문신(門神)의 역할을 하였다. 이 두 신은 또 다른 신인 종규(鍾馗)와 함께 귀신을 쫓는 문배로 기능하였다. 또한 복숭아나무로 만든 몽둥이인 도봉은 악령의 침입을 막기 위한 나례 등에 사용하였다가, 이를 버리지 않고 문 앞에 세워 두고 악령 침입을 방지하였다.
신도울루목이 새겨진 복숭아나무 부적은 매년 교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연초에 대문에 붙였던 기존의 것을 떼어 내고 새것으로 붙여 새해를 맞이하였다. 이처럼 도부를 문 밖에 다는 것이 세시 행사로 치러졌는데, 이것은 외부로부터 악귀의 침입을 막는다는 의미와 함께, 신년에 복을 맞아들이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신도울루목은 1669년(현종 10) 절물(節物)인 송엽(松葉)·도지(桃枝)·춘번(春幡)·인승(人勝)·세화(歲畵)와 함께 비용 절감을 위해 진상을 폐지하였다(『현종실록』 10년 2월 13일). 1686년(숙종 12) 숙종대에 들어 일부 품목을 복구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선대 왕의 전례에 따라 절물의 진상을 완전히 폐지하였다(『숙종실록』 12년 11월 18일). 이후로 더 이상 이에 대해서 언급되지 않았다.
형태
신도울루목은 복숭아나무에 신도와 울루의 이름을 각각 새기거나 그림을 그려 넣거나 혹은 잡귀를 쫓아 주는 글귀를 써서 만들었다. 신도울루목의 형태는 도봉과 도판이 있다. 도봉은 복숭아나무로 만든 방망이로 1479년(성종 10) 중궁이 신도울루목으로 말뚝을 박았다(『성종실록』 10년 6월 5일)는 기사를 보건대 손에 들고 상대방에게 휘두를 만한 크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도판은 복숭아나무로 만든 판으로 그곳에 신도·울루의 상징을 필사하거나 그렸을 것이라 짐작된다. 신도와 울루는 무서운 장군신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이 둘을 문에 붙일 때는 대문을 정면에서 보았을 때 신도는 좌측에 울루는 우측에 배치한다.
복숭아나무로 만든 재액의 상징물은 도봉에서 사람의 모습을 새긴 도경이었다가 이후 신의 모습을 그리거나 길상어(吉相語)를 새긴 도부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다시 글씨만을 필사한 춘련(春聯)으로 변화했다는 설이 있다. 도부는 당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이며, 춘련은 오대 때부터 등장하였다. 신도울루목은 도부 형태와 가장 유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신도와 울루는 민간신앙에서는 가신의 일종인 문신으로 인식된다. 이들의 이름을 필사한 종이나 그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을 그려 문 밖에 붙여 놓기도 한다. 복숭아나무는 귀신을 물리치는 것으로, 특히 악귀를 쫓는 데 효과적이라 믿었다. 속신에 의하면 복숭아나무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며, 열매가 많아 다산의 상징으로 표상된다. 또한 양기의 촉으로 음기를 쫓는 힘이 있어, 특유의 약미(藥味)가 흉사의 기를 쫓는다는 등 여러 속설이 있다. 복숭아나무 가지를 금줄에 달아 문에 걸면 귀신을 막는다고도 믿어졌다.
참고문헌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도은집(陶隱集)』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무명자집(無名子集)』
- 『송자대전(宋子大全)』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유서(類書)』
- 『자저(自著)』
- 『퇴계집(退溪集)』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신문·잡지편(1876~1945)』,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현대신문편(1946~1970)』, 2006.
- 이능화 지음·서영대 역주, 『조선 무속고-역사로 본 한국 무속-』, 창비, 2008.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 김명자, 「한국 세시풍속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
- 이능화, 「조선 무속고」, 『계명』, 1927.
- 中村喬, 「春聯と門神」, 『中國歲時史の硏究』, 朋友書店符, 1993.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