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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20 기준 최신판



입춘을 상징하는 깃발 장식.

개설

춘번(春幡)이라 불리기도 한다. 비단을 잘라 만든 기로, 입춘(立春)에 쓰인다. 왕에게는 족자 형태를 진상하였다. 왕은 입춘을 기념해 관리들에게 춘번자를 하사하였다. 이것은 사람들의 머리에 달아 주기도 하고 꽃가지에 걸기도 하였다. 춘번자는 봄을 상징하는 깃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의하면 고려에서도 춘번자를 주고받는 전통이 있었다. 춘번자가 언제부터 유래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의 전통이 조선에도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에서도 입춘에 백관(百官)들에게 나누어 주어 각이 지고 위가 평평한 관모인 복두(幞頭) 위에 달고 입조(入朝)하여 하례를 올리게 하였으며, 이후 관리들은 이것을 단 채로 귀가했다. 1466년(세조 12) 정인지(鄭麟趾) 등에게 주연을 베풀어 춘번자를 끼운 모자[春幡子揷帽]를 두루 하사하고 차례대로 술잔을 올리게 하였다(『세조실록』 12년 12월 22일).

1669년(현종 10)에 절물(節物)인 송엽(松葉)·도지(桃枝)·도판(桃板)·인승(人勝)·세화(歲畵)·진배(進排)와 함께 춘번을 폐지하였다(『현종실록』 10년 2월 13일). 재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형태

춘번은 금과 은 그리고 비단을 이용하여 만든 깃발[春幡] 모양의 장식물이다. 입춘에 춘번을 나무 끝에 매달거나 혹은 작게 만든 춘번을 머리에 매달거나 모자에 장식처럼 달기도 하였다. 족자 형태의 춘번자는 주로 왕에게 진상할 때 제작되었는데, 깃발의 상단과 하단을 끝부분에 나무 봉으로 고정하여 만들었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춘번은 사대부가와 민간에서는 비단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머리에 꽂거나 나무에 걸어 두어, 봄을 맞이하였다.

참고문헌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임하필기(林下筆記)』
  • 『점필재집(佔畢齋集)』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 김명자, 「한국 세시풍속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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