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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17 기준 최신판



백색을 띤 자기질의 큰 접시.

개설

조선시대의 백자반(白磁盤)은 일반적으로 접시로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예기(禮器)·제기(祭器)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반(盤) 종류는 백자는 물론 분청사기, 청화백자, 도기 등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연원 및 변천

백자반에 관한 기록은 현재까지 『조선왕조실록』에 유일하게 남아있다. 1428년(세종 10)에 “대호군(大護軍)윤중부(尹重富)가 화룡(畫龍) 족자(簇子) 1폭과 당 태종(太宗)의 소릉도(昭陵圖) 족자(簇子) 1쌍과 백자반 4개를 바치니, 쌀 20석을 내렸다.”는 내용이다(『세종실록』 10년 8월 1일). 조선전기 문신이자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지낸 윤중부는 조선초기에 명나라의 환관을 지낸 그의 형 윤봉(尹奉)이 중국 조정의 총애를 받게 되자 더불어 왕실의 인정을 받아 한때 사신(使臣) 자격으로 중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인물이다. 따라서 세종대에 진상된 백자반이 반드시 조선산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그릇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명품 족자와 더불어 백자반이 진상된 것으로 보아 산지(産地)를 구별하지 않더라도 상당히 우수한 품질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형태

조선시대에 제작된 백자반은 크기가 큰 접시 형태이며, 용도에 따라 동체(胴體)에 다리를 붙이거나 상형물(像型物)을 부착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백자반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유물이 전해지지 않아 그 형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다.

참고문헌

  • 김영원, 『朝鮮前期 陶磁의 硏究―分院의 設置를 中心으로』, 학연문화사, 1995.
  • 김영원, 『조선시대 도자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 방병선, 『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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