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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2:59 기준 최신판



창덕궁 후원에 대비의 전각으로 지어진 수정전 동쪽 담장에 있는 문.

개설

수정문(壽靜門)은 수정전을 두르는 담장에 설치된 문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름이 주는 정보와 달리 수정문은 수정전의 정문이 아니고 동쪽 담장에 설치된 작은 문이다. 수정문이 효종대에 만들어진 것인지 정조 연간에 수정전을 전면적으로 확장하고 보수할 때 새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동궐도」 상의 수정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궁궐의 후원 깊숙한 곳에 대비전을 마련하였기 때문인지 담장과 판장으로 여러 번 공간을 나누거나 감싸주었고, 출입하는 문도 다른 영역에 비해 많이 설치된 편이다. 수정문은 수정전의 정문은 아니지만 대비가 바깥출입을 하거나 왕이 수정전에 임어할 때 공식적인 동선에 속했으며, 대비에게 바치는 의례 때에도 주요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 및 용도

수정문은 창덕궁의 후원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대비전 영역, 즉 수정전의 동쪽 문이다. 수정전 건물을 둘러싼 행각을 바깥마당이 다시 둘러싸고 그 마당을 다시 담장이 에워싸서 여러 부분으로 영역을 나누었는데, 동쪽 담장에 남쪽으로부터 여양문·금광문·수정문이 차례로 놓여있다. 이들 가운데 수정문이 가장 중요한 동선에 속했다.

변천 및 현황

수정전은 17세기 인조대 이전부터 있었던 전각이지만 효종이 1654년(효종 5)에 대비인 장렬왕후를 위해 대비전으로 새로 수보하고 영역을 확장하여 조성하였다. 이때까지는 아직 수정당이라는 당호를 가지고 있었다.

궁궐 수리를 하면서 만든 『창덕궁창경궁수리도감의궤』에 따르면 창덕궁 내에 옛날부터 있던 본래의 수정당은 「동궐도」에 보이는 것처럼 궁궐의 주요 전각들이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동서익각의 온돌을 갖춘 규모 있는 건물은 아니었고, 별당 규모의 온돌과 마루로 구성된 자그마한 전각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의궤의 내용 중에는 수정당의 북문을 수보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담장이나 행각으로 둘러싼 독립적인 전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효종대에 풍정(豐呈)을 열 만한 규모로 새로 수보되면서 수정당을 둘러싼 문들도 새롭게 조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1794년(정조 18)에 정조가 정순왕후를 모시는 집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전각의 규모를 일신하여 확장 수보했고, 수정전으로 위계를 높여 불렀다. 정조는 수정전을 수보할 때에 수정문 밖에 나아가 수정전의 보계와 수정문을 개수하는 공사를 친히 살폈다(『정조실록』 18년 12월 24일). 1794년 12월 18일에 정순왕후의 환갑과 존호를 올리기 위한 잔치를 의논하면서 잔치를 연습하던 날 수정전으로 전호를 걸었고, 문서에도 수정전으로 호칭하라는 전교를 내렸다. 그다음 해인 1795년(정조 19) 1월 13일에 이 잔치를 위한 연습이 더 있었고 1월 16, 17일 양일간 수정전에서 대비를 위해 연향을 베푼 공식 행사가 행해졌다. 1813년(순조 13)에 이르러 수정전 행각이 화재로 소실되었다가(『순조실록』 13년 12월 18일) 수보되었다.

이후 수정전의 쓰임은 자세히 알 수 없는데 고종대에 이르렀을 때, 왕의 최측근 기관이던 무위소에 수정전의 중건과 주변 부속 건물의 영건을 명하는 기록이 보인다. 수정전은 중건하고 여타의 부속 건물들에 대해서는 영건한다는 명백한 구분을 하였는데, 아마도 수정전의 영역은 그간 소실되었거나 크게 훼손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동측의 문이었던 수정문도 이미 훼손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이후 수보되거나 복구되지는 않은 듯 보여진다. 이때 집옥재, 협길당과 같은 부속 건물을 함께 영건하면서 전각의 규모를 키우고 새로운 형태의 건축물을 조성하면서 전각명도 바꾸어 ‘함녕전’이라 이름하였다(『고종실록』18년 7월 22일). 함녕전의 대문도 새로이 건설되었지만 수정문과는 관계없는 문이다. 함녕전 건설 도중 한 차례 화재가 났으나 여전히 건설은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의 영향이었는지 함녕전의 건설은 중지되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9년 뒤인 1891년(고종 28)에 함녕전 영역의 건물들을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이건하였으며 집옥재, 협길당 등이 경복궁 후방에 놓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수정문은 담장에 난 일각문으로 주칠을 한 2짝 판장문으로 되어있고 맞배지붕이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창덕궁창경궁수리도감의궤(昌德宮昌慶宮修理都監儀軌)』
  • 『궁궐지(宮闕志)』
  • 『홍재전서(弘齋全書)』
  • 조옥연 , 「조선궁궐의 동조건축에 관한 연구」, 경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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