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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2:58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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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일광산사 |
한글표제 | 일광산사 |
한자표제 | 日光山社 |
동의어 | 닛코 도쇼구[東照宮] |
관련어 |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 동조궁(東照宮) |
분야 | 정치/외교/외교사안 |
유형 | 건축 |
지역 | 일본 |
시대 | 조선후기 |
왕대 | 조선후기 |
집필자 | 노영구 |
장소 | 일본 닛코[日光]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일광산사(日光山社)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인조실록』 20년 2월 18일, 『인조실록』 21년 1월 24일 |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안장된 사당.
개설
1616년 에도막부(江戶幕府)를 개창하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사망하자 처음에 구능산 동조궁(東照宮)에 유골을 안치하였다가, 이듬해 도치기현의 닛코[日光] 시에 있는 일광산(日光山) 사당을 건립하여 다시 안치하였다. 에도막부의 3대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대에 들어 이 사당을 크게 확장하였다. 그리고 1642년 2월 조선에 사신을 보내 이곳에 걸 편액과 시를 내려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일본의 요구에 응하여 일광정계(日光淨界)라는 큰 편액과 김류(金瑬) 등이 쓴 시문을 내려 주었다.
위치 및 용도
일광산사가 있는 닛코는 일본 혼슈[本州] 간토 지방의 도치기현에 자리 잡고 있다. 동경(東京)에서 140여㎞ 정도 떨어져 있는 산간 도시로서 8세기부터 린노지 등 불교 사원이 들어서는 등 일찍부터 불교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1616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망하자 이듬해 이곳에 동조궁을 건립하여 그의 유골을 안치하였다. 1635년 대대적인 중건을 통하여 그 규모가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 사당으로 확대되었다. 에도시대에는 막부가 에도에서 닛코의 동조궁까지 장엄한 행렬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변천 및 현황
1617년 소규모의 사당으로 건립되었던 일광산사는 이후 에도막부의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대규모의 사당으로 확대하였다. 이 사당이 준공되자 1642년(인조 20) 2월 에도막부에서 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이곳에 걸 편액과 시문을 내려 줄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종(鐘)과 서명(序銘)을 구하였다. 조선에서는 왕자인 의창군이광(李珖)에게 일광정계라는 서(序)를 짓고 이식(李植)이 명(銘)을 짓고 오준(吳竣)이 글을 쓰도록 하였다. 또한 시문을 지을 사람을 뽑았는데 최초 김류·최명길·이식·홍서봉·이명구·이성구·이경전·신익성·심기원·김시국 등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김류는 그의 아버지 김여물(金汝岉)이 임진왜란 중 전사하였으므로 사양하고 짓지 않았다고 한다(『인조실록』 20년 2월 18일). 이후 조선은 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할 때 이곳 일광산사에 들러 치제를 지내기도 하였다(『인조실록』 21년 1월 24일).
형태
일광산사의 입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문인 요메이문[陽明文]이 있고 두 번째 문으로 흰 장식이 된 당문(唐門)이 있다. 요메이문 근처에는 조선 통신사가 기증한 조선 범종(梵鐘)과 함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기증한 샹들리에가 있다. 이어 당문 주변에는 잠자는 고양이와 원숭이의 부조 그림이 있는데 이는 평화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주위에는 1650년 다이묘가 기부해 건립된 5층탑이 서 있다. 이 탑은 이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18년에 재건되었는데 각 층은 각각 흙과 물·불·바람·하늘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이서 각종 전각이 늘어서 있고 이어 수백 개의 계단이 삼나무 숲을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까지 이어져 있다. 마지막에 5m 높이의 청동탑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골이 안장되어 있다.
관련사건 및 일화
1616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75세의 나이로 사망할 당시 그는 ‘닛코에 조그만 사당을 지어 나를 신으로 모셔 달라. 나는 일본을 지키는 신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는 닛코가 에도의 정북(正北)에 위치해 있어 우주의 부동의 중심인 북극성에 해당되므로 이를 통해 에도막부의 안녕과 평화를 지키겠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전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이듬해 닛코에 자그마한 사당인 동조궁을 짓고 그의 유골을 안치하였다. 그러나 이후 3대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미쓰에 의하여 1635년 동조궁에 대한 대대적인 중수가 시작되었다. 당시 금 568,000냥, 은 100관(貫), 쌀 1,000석, 목재 140,000본(本)을 사용하여 1년 5개월에 걸쳐 크게 중건되었다. 당시 화가 등 동원된 인력이 연 4,540,000명에 달할 정도였다. 1636년 대공사를 통해 35동의 대규모 사원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현재 동조궁 내에는 일본의 국보 8점 등 중요문화재 55점이 남아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 『해행총재(海行摠載)』
- 아사오 나오히로 저·이계황 등 역, 『새로 쓴 일본사』, 창비, 2000.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