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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2:58 기준 최신판



고려시대에 축성한 포곡식 산성으로 임진왜란 시 왜군을 방비하기 위해 개축한 산성.

개설

임진왜란기 왜군의 전라도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수축한 산성이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다.

위치 및 용도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대리에서 강진군 병영면에 걸쳐 있으며 고려시대에 남해안에 자주 출몰하였던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보인다.

변천 및 현황

성의 축조는 천험의 산세를 이용한 협축식(夾築式)으로 양면이 거의 수직에 가까운데, 성안에는 봉수대와 수인사지·군고지(軍庫址)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장성입암산성(笠巖山城)과 담양금성산성(金城山城) 및 나주 금성산성(錦城山城)과 함께 수인산성이 기록되고 있어 이 성의 축조 연대는 고려시대로 추측된다.

1593년(선조 26)에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전일 전라감사이정암(李廷馣)의 장계에 의하면, 도내의 산성을 살펴보니 남원의 교룡산성(蛟龍山城), 담양의 금성산성, 순천의 건달산성(乾達山城), 강진의 수인산성, 정읍의 입암산성이 모두 자연지형이 험준한 요새로 되어 있어 난을 당하여 화를 피하는 데는 이보다 좋은 데가 없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여 성의 수축이 이루어졌고(『선조실록』 26년 12월 3일), 1604년(선조 37)에는 장흥에 있던 병영을 이곳에 옮기려는 논의가 있었다(『선조수정실록』 37년 8월 1일). 1870년(고종 7)에는 전라병사이승연(李承淵)의 요청으로 산성 내에 종9품의 무관직인 별장(別將)을 두었다(『고종실록』 7년 5월 26일).

형태

계곡을 감싸고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며,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협축식으로 양면이 거의 수직에 가깝게 축조되었다. 성의 둘레는 약 6㎞이다. 높이 5m, 너비 4m이고 3개의 성문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수인산성의 둘레는 1,396m로 보이며, 6개의 샘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인산성은 둘레가 3,756척(약 1.1㎞)이고 본래는 도강현(道康縣) 때의 성인데 본조에서 다시 쌓았다.”고 하였는데 현 강진군을 고려시대에 ‘도강’이라 불렀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 성은 고려시대에 쌓았음이 분명한 것 같다.

관련사건 및 일화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