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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2:37 기준 최신판



새해 첫날 아침.

개설

정조(正朝)·세단(歲旦)·세조(歲朝)·삼조(三朝)·삼시(三始)·삼원(三元)·원조(元朝)·단진(端辰)이라 불리기도 한다. 원단에는 주로 새해를 축하하는 하례의식과 조상을 위한 제사가 행해진다. 왕은 신하들로부터 조회를 받는 정전인 법전(法殿)에서 신하들의 하례를 받았으며, 명(明)의 황제가 있는 곳을 향하여 망궐례(望闕禮)를 행하였다. 7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별세찬(別歲饌)을 나누어 주었다. 원단에는 새옷[歲粧]으로 갈아입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아랫사람은 웃어른에게 세배를 하러 다녔다. 시절음식으로는 세찬(歲饌)과 세주(歲酒)를 먹었다.

연원 및 변천

원단은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새해의 아침이다. 1년의 해[歲]·월(月)·일(日)이 처음인 아침이라는 의미에서 삼조(三朝)·삼원(三元), 혹은 세 개의 시간이 모두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에서 삼시(三始)라 불리기도 한다. 이날 새벽은 삼시에 때[時]를 더해 사시(四始)라 한다. 이는 『사기(史記)』「천관서(天官書)」에 전해진다. 원단은 원일 아침이란 뜻으로 원일의 일부분이다. 원일은 고려의 9대 속절(俗節) 중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한식·단오·추석과 함께 4대 절사(節祀)의 하나였다.

이날은 조정의 관리와 지방관들이 모두 참여하여 새해를 맞이하며 서로 인사하는 정조경하(正朝慶賀)로 시작하였다. 하례의 연원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당서(新唐書)』「신라전(新羅傳)」에 원일에 서로 축하하는 것[相慶]은 새해를 맞이하는 경사스러운 인사로 절을 하는 것이라 하였다. 서거정(徐居正)의 『사가집(四佳集)』에 의하면, 명(明)에서 원단의 아침 하례는 삼조경(三朝慶)이라 하였는데, 이는 삼조경하(三朝慶賀)의 줄임말로 원단을 축하하며 인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원단에 행해졌던 또 다른 하례의식으로는 망궐례가 있다. 이는 조선 개국 당시부터 행해져 온 의식이었으나, 1639년(인조 17)에 명정전(明政殿)에서 몰락한 명나라를 위해 지낸 것(『인조실록』17년 1월 1일)을 마지막으로, 이후에는 더 이상 명을 위한 망궐례를 행하지 않았다.

원단에는 조상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는 차례를 지냈는데, 이 또한 하례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인용된 후한(後漢)의 『월령(月令)』에는 정일(正日)에 조상에게 정결한 제사를 지내고 초백주(椒柏酒)를 마셨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는 이날 도라지, 방풍, 산초, 육계를 넣어서 빚은 술인 도소주(屠蘇酒)와 엿기름을 고아 만든 엿인 교아당(膠牙餳)을 진설하였는데, 이것이 세찬과 세주의 시초라고 하였다. 이날 남녀노소가 새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이것을 세비음(歲庇廕)이라 한 것으로 보아, 이 말이 후에 ‘설빔’이 된 것으로 짐작된다.

절차 및 내용

원일의 행사는 신년을 축하하며 서로 문안인사를 하고 또한 조상에게 이를 고하는 의식이 주를 이룬다. 대부분의 이러한 행사는 원단인 설날 아침에 이루어진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원단의 조회(朝會)는 법전에서 화려하게 거행되었으며, 관리들은 표전(表箋)과 표리(表裏)를 왕에게 올렸다고 하였다. 표리는 세시입내(歲時入內)라 하여 새해에 사용할 모시실, 베실 따위로 짠 피륙 등속인 포속(布屬)이나 명주 혹은 면포 등을 말하며, 이를 전문과 함께 가져오게 하였다. 또한 원단을 축하하기 위해 팔도의 관찰사와 각 주의 목사(牧使) 그리고 병사와 수사의 수장들도 모두 올라와 표전과 방물(方物)을 올리며 하례하였다. 방물은 세의(歲儀)와 세궤(歲饋)에 해당되는 것으로, 대개 지역 특산품이 주를 이룬다. 각 도에서 올라온 지방의 특산품은 세찬과 세장으로 쓰였다.

원단에는 왕이 명의 황제에게 망궐례를 행하였다. 망궐례는 왕이 모든 관료[百官]와 왕세자를 거느리고 중국의 황제가 있는 궁전 쪽을 향하여 배례하는 의례이다. 망궐례는 이날 외 동지 및 성절(聖節)과 천추절(千秋節) 등에도 행하였다. 국가에서는 신년을 맞이하여 웃어른을 공경하는 의미로 장수한 노인들에게 별세찬을 내렸다. 그 내용물은 세찬과 설빔으로 보인다.

『경도잡지(京都雜誌)』와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원단에는 남녀가 모두 설빔으로 갈아입고, 세찬과 세주를 마련하여 사당에 진설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정조차례(正朝茶禮)라 하였다. 사당에 먼저 고한 뒤에는 술·과일·떡·탕·적·국수·식혜 등의 음식을 마련해 조상의 산소를 찾아 성묘하는 속절제를 행하였다. 이 묘제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는 인사를 조상의 묘에 고하는 것이다. 또한 친척이나 이웃어른을 찾아 세배하였다. 세찬으로는 흰 떡국[餠湯]을 먹었으며, 세주로는 사기를 없애고 괴질을 물리쳐 준다는 도소주와 산초나무 열매와 잣을 넣어 빚은 초백주(椒柏酒)를 마셨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원단에는 청참(聽讖)이라 하여 새벽에 거리로 나가 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한 해의 길흉을 점쳤다. 또한 윷을 던져 그 앞뒤로 나온 형태를 보고, 새해의 길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4개의 윷을 던져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64가지였다. 윷은 총 3번 던져야 하는데, 그 이유는 첫 번째 던지는 것은 묵은해를, 두 번째 던지는 것은 새해 설날을, 세 번째 던지는 것은 정월 보름의 점괘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를 괘로 만들어 각각의 점괘에 따라 그 의미를 부여한 점사(占辭)는 『경도잡지』에 보다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사기(史記)』
  • 『신당서(新唐書)』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무명자집(無名子集)』
  • 『사가집(四佳集)』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택당집(澤堂集)』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 김명자, 「한국 세시풍속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
  • 상기숙, 「중국 세시풍속을 통해 본 민간신앙 제양상」, 『동방학』제18집,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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