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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2:36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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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수세 |
한글표제 | 수세 |
한자표제 | 守歲 |
동의어 | 경신수야(庚申守夜), 불밝히기, 해지킴 |
관련어 | 별세(別歲), 삼시충(三尸蟲), 수경신(守庚申) |
분야 | 생활·풍속/풍속/행사 |
유형 | 의식·행사 |
지역 | 대한민국, 중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최진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수세(守歲)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조실록』 5년 12월 30일, 『세조실록』 11년 12월 30일, 『성종실록』 17년 11월 19일, 『연산군일기』 3년 12월 29일 |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자지 않고 밤을 지새우는 풍속.
개설
해지킴 혹은 불밝히기라 한다. 경신수야(庚申守夜)라 불리기도 한다. 섣달그믐에 집안 곳곳에 등을 켜서 환하게 밝혀 놓고 밤을 지새우는 풍속을 말한다. 이날은 천상에 올라간 조왕신이 내려오는 날이며, 또한 삼시충(三尸蟲)이 빠져나가지 못하게끔 하는 날이다. 이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연원 및 변천
수세는 중국 촉(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수세와 관련해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의 소동파(蘇東坡)의 촉 풍속기가 인용돼 있다. 이에 따르면 촉에서는 한 해의 마지막 날 술과 음식으로 잔치를 베풀며 여러 사람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것을 별세(別歲)라 했고, 밤에 집 안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자지 않는 것을 수세라 하였다.
수세의 연원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더 전해진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수세는 경신수야의 유속이라 하였다. 이는 수경신(守庚申)이라고도 불리던 도교의 행사이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의하면 수세는 고려에서 국속(國俗)의 하나로 행해졌다.
경신일은 6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데, 이 주기는 인간의 몸 안에서 기생하고 있는 삼시충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주기와 유사하다. 삼시충은 상제에게 인간의 죄를 고해바치기 위해 인간이 잠든 사이 빠져 나간다고 믿어진다. 그 죄업으로 인해 인간의 수명이 단축되므로 삼시충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경신일에는 잠을 자지 않는 풍속이 있었다. 경신수세는 매년 있는 것이 아니라 6년에 한 번 돌아오는데, 경신수야를 7번 하면 삼시충은 없어진다고 한다.
경신수야 외에 또 다른 수세의 유래는 천상에서 내려오는 조왕신을 환영하기 위해 환하게 불을 밝혀 놓았다는 설이다. 『동경몽화록』에 따르면, 제야에 부뚜막에 불을 켜 놓는 것을 조허모(照虛耗)라 하며, 민가에서는 화롯가에 둘러앉아 밤을 새우는 것을 수세라 하였다. 중국에서는 섣달그믐에는 조왕신을 위해 부뚜막과 솥에 불을 환하게 밝혀 놓았는데, 그 이유는 조왕신이 12월 23일 혹은 24일에 천상으로 올라가 1년 동안 집안에서 생긴 일을 보고한 뒤, 그믐날 부뚜막에 좌정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풍속이 수세의 기원이 되었다는 설이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만큼 수경신이 활성화되지는 않았지만, 제야의 수세 풍속은 궁중과 민가 모두에 일반적으로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1459년(세조 5) 섣달그믐날 밤 왕이 중궁(中宮)과 강녕전(康寧殿)에서 연회를 베풀며 수세하는 사람과 입직(入直)한 군사에게도 술과 고기를 내려 주었다고 한다(『세조실록』 5년 12월 30일). 1465년(세조 11) 섣달그믐날 밤도 입직한 군사에게 수세하게 하고 내탕을 하사하였다(『세조실록』 11년 12월 30일). 이후 1486년(성종 17)에 대사헌이경동(李瓊仝) 등이 수경신을 금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성종실록』 17년 11월 19일). 그러나 1497년(연산군 3) 섣달그믐날 밤에 관리들을 모아 수세하게 하고, 술과 안주[酒肴]와 함께 활과 화살[弓矢]과 가죽[皮物]을 내려주어 내기를 시켰다(『연산군일기』 3년 12월 29일)는 것으로 보아 그 풍속이 쉽게 중단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759년(영조 35)에 대나례(大儺禮)와 함께 경신일의 풍속은 폐지되었다[『영조실록』 12월 26일 3번째기사].
절차 및 내용
이날 각 가정에서는 방·뜰·부엌·문·변소 등 집안 곳곳에 불을 켜 놓고 새벽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불을 밝혀 놓는 이유는 잡귀의 출입을 막기 위함이었다. 또한 조왕신을 위해 부뚜막과 솥 뒤에도 불을 밝혔다. 이날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음악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놀이를 하거나, 가정에서는 윷놀이 등을 행하며 수세를 하였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섣달그믐에 잠을 자면 두 눈썹이 모두 희게 센다는 속설이 있어 어린이들이 잠을 자지 않으려 하였으며, 혹여 자는 아이가 있으면 분을 개어 자는 아이 눈썹에 발라 놓기도 하였다고 한다. 1759년(영조 35)에 이 수세의 풍속을 폐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는 계속 그 풍속이 유지되었다.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인가(人家)에서는 여전히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밤을 새웠다고 하였다. 특히 놀기 좋아하는 풍류객들이 섣달그믐날 수세에 주로 참여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 신영순, 「조왕 신앙 연구」, 영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 정연학, 「중국의 가정신앙: 조왕신과 뒷간신을 중심으로」, 『한국의 가정신앙』상, 민속원, 2005.
- 최숙영, 「조왕의 성격과 전승양상」, 『지방사와 지방문화』제12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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