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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2:36 기준 최신판



음력 2월과 8월 상순에 길일을 택하여 숭의전(崇義殿)에서 고려 시조에게 향사(享祀)하던 의례.

개설

국가의 제사 대상 중 살아서 행한 공덕(功德)을 인정받아 사후에 신으로 모셔진 대상을 ‘인귀(人鬼)’라 하고, 인귀에 대한 제사를 ‘향(享)’이라고 한다. 조선초기인 1397년(태조 6)에 경기도 마전군(현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고려 시조의 사당을 세우고, 1451년(문종 1)에 숭의전이라 이름 하였다. 음력 2월과 8월 상순에 길일을 택한 뒤,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에게 향(香)과 축(祝)을 전하여 제사하게 하였다. 제사의 규모는 중사(中祀)였다. 폐백으로는 자의 일종인 조례기척(造禮器尺)을 기준으로 1장 8척 길이의 흰색 저포(苧布)를 올리고, 희생(犧牲)으로는 돼지 1마리, 양 1마리를 사용하였다.

연원 및 변천

조선을 건국한 뒤 태조이성계(李成桂)는 1397년에 경기도관찰사로 하여금 고려태조왕건(王建)의 사당을 마전군 서쪽 5리 지점에 짓도록 하였다. 1414년(태종 14)에는 예조(禮曹)에서 여러 제사의 의례 절차를 정하여 올렸는데, 여기에 고려 시조에게 제사하는 의주(儀註)도 포함되었다(『태종실록』 14년 9월 8일). 그 뒤 문종 연간인 1451년(문종 1)에는 고려 시조의 사당을 숭의전이라 명명하고, 정몽주(鄭夢周)를 비롯한 고려시대의 공신 16명을 함께 제사하도록 하였다.

1455년(세조 1)에는 예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고려 시조 이하 배향 제신(配享諸臣)의 위차(位次)는 시대의 선후에 따르도록 하였다. 또 제사를 지낼 때는 신주를 숭의전의 뜰에 동쪽으로 가깝게 서향하도록 하고 북쪽을 위로 삼아 배치하되, 지면이 좁으면 겹줄로 차례로 앉히게 하였다(『세조실록』 1년 8월 24일). 1695년(숙종 21)에는 ‘향고려시조의’를 거행할 때 축문에서 ‘고려태조대왕(高麗太祖大王)’이라 칭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예조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 자를 빼도록 하였다(『숙종실록』 21년 4월 17일).

절차 및 내용

의식은 의례를 거행하기 전의 준비 과정과 제사 당일의 의례 절차로 구분된다. 준비 과정이란 재계(齋戒), 진설(陳設), 성생기(省牲器) 등을 말한다. 당일의 의례는 사배례(四拜禮), 전폐(奠幣), 삼헌(三獻), 음복수조(飮福受胙), 철변두(徹籩豆), 망예(望瘞)의 순서로 진행한다.

재계는 예조의 요청에 따라 총 5일간 행한다. 3일 동안은 산재(散齋)라 하여 평소처럼 일하면서 음식과 행동을 삼가고, 2일 동안은 치재(致齋)라 하여 오직 제사와 관계된 일만 행한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의식 향고려 시조의 재계). 진설은 제사 2일 전에 사당을 청소하고 제사에 사용할 집기 및 그것을 보관할 장막을 설치하는 일과, 제사 하루 전에 제사에 참석할 사람들의 자리와 의례를 행할 자리를 정하고 신위를 놓아두는 신좌(神座)를 설치하는 일 등을 말한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의식 향고려 시조의 진설). 성생기는 제사 하루 전에, 희생과 음식을 담는 찬구(饌具)가 합당한지 살펴보고 희생을 잡는 일을 가리킨다.

제사 준비가 끝나면 당일 축시(丑時) 5각(刻) 전에) 신위판을 설치하고, 제사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과 헌관(獻官)은 축시 1각 전에 정해진 자리로 나아간다. 헌관이 자리에서 4번 절하면 참석자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4번 절하며 신을 맞이하는데, 이를 사배례라고 한다.

전폐는 헌관이 향을 3번 올린 뒤 미리 준비한 폐백을 신위 앞에 놓는 일을 말한다. 폐백으로는 조례기척을 기준으로 1장 8척 길이의 흰색 저포를 올린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서례 폐백). 삼헌은 신에게 술잔을 3차례 올리는 일을 가리킨다. 첫 번째 잔을 올리는 것을 초헌, 두 번째를 아헌, 세 번째를 종헌이라 하는데, 대개 첫 번째 잔을 올린 뒤 축문을 읽는다.

제사에 올린 술은 복주(福酒), 고기는 조육(胙肉)이라고 하는데, 헌관이 조육을 받고 복주를 받아서 마시는 절차를 음복수조라고 부른다. 여기까지가 신을 모시고 경건하게 예를 행한 뒤 복을 받는 절차이다. 음복수조가 끝나면 모신 신을 돌려보낸다는 의미에서 철변두를 행한다. 철변두는 제기인 ‘변(籩)’과 ‘두(豆)’를 거둔다는 뜻이지만, 실제 의례에서는 변과 두를 조금씩 움직여 놓는다. 그런 다음 헌관이 4번 절하여 송신(送神)의 절차를 마치면, 제사에 사용한 축판과 폐백을 미리 준비한 구덩이에 묻는데 이를 망예라고 한다. 구덩이의 흙을 반쯤 덮으면 헌관이 먼저 퇴장하고, 이후 나머지 참석자들도 4번 절하고 나간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춘관통고(春官通考)』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춘정선생속집(春亭先生續集)』
  • 김해영, 『조선 초기 제사전례 연구』, 집문당,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