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석(欄干石)"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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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3일 (수) 00:51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왕릉의 능상(陵上) 위 봉분 둘레를 장식하는 난간 모양의 석물.

내용

봉분 둘레는 병풍석과 와첨상석, 난간석(欄干石) 등으로 둘러 장식하는데, 병풍석과 와첨상석은 금지되어 사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나, 난간석은 대체로 사용되었다. 난간석은 12면으로 이루어지는데, 박석(薄石)을 깔아 바닥을 고르게 하고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석주 12개를 배열하였고, 석주 사이에 동자주를 12개 배열하여 난간이 되는 죽석(竹石)을 받아주었다. 죽석은 8각 기둥 형태로 가로놓인다. 난간석에는 방위를 새겨두는데 석주의 상부 혹은 죽석의 중앙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난간석은 봉분의 외곽 경계로 삼을 수 있다.

그림  난간석(예릉)

용례

世祖平日禁設莎臺石 睿宗承遺敎 豈敢違越 且成寢已久 今設臺石 心亦未隱 陵寢制度高峻 無漸以此崩頹 宜退欄干石加築土 使陵形陂陁 以圖永久爲便(『성종실록』 9년 7월 23일)

禮曹啓曰 顯陵兩陵失火處 自欄干石以下 至丁字閣 竝改莎土 則非徒功役極難 來月望時 則新草生長 雖不改修 亦無所妨 只陵上莎土改修 何如 傳曰 允(『선조실록』 29년 3월 14일)

참고문헌

  • 김왕직, 『알기 쉬운 한국건축용어사전』, 동녘, 2007.
  • 문화재연구소, 『(국역)국조상례보편』, 민속원, 2008.
  • 문화재청, 『조선왕릉답사수첩』, 미술문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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