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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淑嬪崔氏)의 묘.

개설

숙빈최씨는 무수리로 궁궐에 들어와 인현왕후(仁顯王后)를 섬기다가, 인현왕후가 폐출된 뒤 승은을 입고 1694년(숙종 20)에 뒷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延礽君)을 낳았다. 그해 숙의(淑儀)가 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귀인(貴人)에 올랐고, 1699년(숙종 25)에는 정1품 숙빈에 봉해졌다. 그 뒤 1718년(숙종 44) 3월 9일에 세상을 떠나, 그해 5월에 안장되었다. 숙빈의 묘는 도성에서 70리 거리인 경기도 양주의 상운산(祥雲山)고령동(高嶺洞) 옹장리(瓮場里)에 자리 잡았다. 1744년(영조 20)에 영조는 숙빈의 묘를 소령묘(昭寧墓)라 부르게 하였으며, 1753년(영조 29)에는 숙빈에게 화경(和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영조실록』 29년 6월 25일).

조성 경위

1718년에 49세로 숙빈이 세상을 떠나자 처음에는 현종의 딸인 명혜공주(明惠公主)와 명선공주(明善公主)의 묘산 안에 위치한 청룡의 터로 택점하였으나, 숙종은 왕족이 묻힌 옆산이라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성종과 정현왕후(貞顯王后)의 능인 선릉(宣陵) 근처로 정했는데, 숙종은 왕릉 부근은 백성이 묘를 쓰지 못하도록 금하면서 숙빈의 묘를 쓰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하며 다른 곳으로 바꾸도록 하였다(『숙종실록』 44년 4월 29일). 결국 숙빈의 묘는 양주에 자리 잡게 되었다.

조성 상황

소령원은 삼면에 곡장을 두르고 봉분 앞에 상석(床石)을 두었는데, 상석의 크기가 작아 앞에 향로석을 별도로 두었다. 그밖에 장명등 1개,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을 설치했다. 이후 마석(馬石), 양석(羊石), 호석(虎石)을 2개씩 신설했는데, 1753년(영조 29)에 소령묘를 소령원(昭寧園)으로 높일 때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정자각은 원종의 생모 인빈김씨(仁嬪金氏)의 묘인 순강원(順康園)의 제도를 따랐으며, 수라간 3칸과 망료위(望燎位)를 두었다.

소령원에는 세 개의 표석이 있는데, 능상의 표석에는 ‘조선국후궁최씨지묘(朝鮮國後宮崔氏之墓)’라 쓰여 있다. 정자각 서북쪽 82보 거리에 있는 표석에는 ‘숙빈최씨소령묘(淑嬪崔氏昭寧墓)’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1744년(영조 20) 8월에 세운 것이다. 정자각 북쪽 5보 거리에 있는 표석은 원(園)으로 승격된 1753년 6월에 세운 것으로, ‘조선국화경숙빈소령원(朝鮮國和敬淑嬪昭寧園)이라 되어 있어 숙빈최씨 묘의 위상이 점차 올라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동구 동남쪽에 있는 신도비는 1725년(영조 1)에 세운 것인데, 후궁의 신도비로는 드물게 거대한 귀부가 받치고 있다. 홍살문 남쪽에는 전사청 3칸이 있고, 전사청 곁에는 제기고 1칸, 재실 8칸, 어재실인 육오당(六吾堂)이 있으며, 그 옆에 기임각(祈稔閣)이 있다.

변천

영조는 1744년, 자신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묘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공경하는 도리를 다하고자 하여 묘호(廟號)는 ‘육경(毓慶)’이라 하고, 묘호(墓號)를 ‘소령’이라 하였다. 다만 육경은 원종의 능인 장릉(章陵)의 옛 원호(園號)와 같다 하여 ‘육상(毓祥)’으로 고쳤다(『영조실록』 20년 3월 7일). 1753년 8월에는 숙빈최씨의 시호를 ‘화경’이라 하고, 소령묘를 원(園)으로, 육상묘(毓祥廟)를 궁(宮)으로 격상하였다(『영조실록』 29년 6월 25일).

관련 사항

소령원의 택정과 묘소 조성 과정을 그린 묘산도(墓山圖)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총 4종이 있는데, 길지를 택하는 과정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묘소도형여산론(墓所圖形與山論)」, 소령원 영역의 전체 배치를 보여 주는 「소령원도(昭寧園圖)」, 화소(火巢)를 표시한 「소령원화소정계도(昭寧園火巢定界圖)」, 봉분 주변의 상설(象設)을 상세하게 보여 주는 「소령원배치도(昭寧園配置圖)」 등이 그것이다. 왕실 원묘의 지형과 배치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귀중한 자료로, 보물 제1535호로 지정되어 있다.

1718년(숙종 44) 숙빈최씨의 묘소를 조성할 당시의 기록인 『제청급석물조성시등록(祭廳及石物造成時謄錄)』에 수록된 도식 중에서 「묘소석물배열도(墓所石物排列圖)」는 앞서 말한 「소령원배치도」와 같은데, 다만 석물의 명칭이 적혀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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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제청급석물조성시등록(祭廳及石物造成時謄錄)』
  • 『춘관통고(春官通考)』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왕실의 행사그림과 옛지도』, 민속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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