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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 (월) 21:09 기준 최신판



계율에 밝은 승려를 높여 이르는 말.

개설

율사(律師)는 산스크리트어 ‘Vinayācārya’를 의역(意譯)한 말이다. 계율에 해박하거나 계율을 정립하는 데 큰 업적을 세운 승려를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북위(北魏)의 혜광(慧光), 당나라의 도선(道宣) 등을 율사라고 불렀고, 우리나라의 경우 신라의 자장(慈藏)과 진표(眞表)를 율사라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신라시대에 자장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사분율(四分律)』에 입각한 계율 실천 및 출가와 수계(受戒) 의식을 정비하였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출가 절차로서 계단(戒壇)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는 수계가 확립되었다. 계율은 불교가 전래되고 출가자를 중심으로 교단이 성립될 때 필요한 전제 조건이므로, 승가(僧伽)의 성립은 곧 지계(持戒)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계율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계율을 전공하는 승려들이 등장하였고, 이들이 구족계를 주는 수계 의식에 참여하였다. 신라말기에서 고려시대 초기까지 선승(禪僧)들의 비문(碑文)에서는, 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을 때 율사가 수계사(授戒師)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조선시대에도 수계 의식 및 계율학에 밝은 승려를 율사라 불렀다. 예종 연간에 부안 망일암(望日庵)의 승려 축일(竺日)은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노인(路引)에 찍힌 도장이 옛날에 부안 문수사(文殊寺)에 있던 율사가 만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예종실록』 1년 10월 30일). 이를 통해 사찰에 계율에 밝은, 또는 수계에 필요한 율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19세기에는 당대의 고승이었던 긍선(亘璇)을 대율사(大律師)라 부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원당선생전집(阮堂先生全集)』
  • 강호선, 「한국불교의 계율전통과 내용」, 『불교평론』50, 2013.
  • 최원식, 「나말여초 선승들의 수계와 지율」, 『백산학보』52, 1999.
  • 杜繼文·黃明信 編, 『佛敎小辭典』, 上海辭書出版社,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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