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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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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태백당 |
한글표제 | 태백당 |
한자표제 | 太白堂 |
동의어 | 태백산사(太白山祠), 태백천왕당(太白天王堂) |
관련어 | 백두옹(白頭翁) |
분야 | 문화/종교/민간신앙 |
유형 | 건축·능·원·묘 |
지역 | 대한민국 |
집필자 | 서영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태백당(太白堂)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5년 3월 3일 |
강원도 삼척 태백산 정상에 있던 신당. 태백산사(太白山祠), 태백천왕당(太白天王堂)이라고도 한다.
내용
태백당(太白堂)은 태백산신 백두옹(白頭翁)의 신상을 모시는 사당이다. 꿈에 백두옹을 본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는데, 심지어 삼척부사들까지 이것이 빌미가 되어 죽었다는 전승으로 미루어 백두옹은 자비로운 신이라기보다는 무서운 징벌의 신이다. 이로 말미암아 강원도·충청도·경상도에서까지 봄·가을로 사람들이 소를 몰고 기도하러 왔는데, 기도가 끝나면 소를 신당 앞에 매어둔 채 허겁지겁 달아났다고 한다. 그것은 돌아보면 소를 아까워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신이 벌을 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버려진 소는 3일 뒤 태백당 주변의 사람들이 잡아먹기도 했지만, 삼척부에서 수거하여 관아의 경비에 보탰는데, 이를 퇴우(退牛)라 했다. 또 태백당에 바친 물건들 역시 거두어서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과 귀후서(歸厚署)의 경비로 사용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태백산신에 대해서는 매년 4월 8일 태백당에서 삼척부 아전의 집으로 모시고 내려와 5월 5일까지 제사하고 다시 돌려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허목(許穆)에 의하면, 태백당은 충학(沖學)이란 승려가 미신타파 차원에서 불을 지르는 바람에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한편 조선후기부터는 단종이 태백산신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용례
禮曹啓 金海 帝釋堂 羅州 錦城堂 三陟 太白堂及其他外方各官神堂 竝令推刷 分屬東西活人院歸厚所 其祀神退物 令所在官收之 納于所屬處(『세종실록』 5년 3월 3일)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용재총화(慵齋叢話)』
- 『미수기언(眉叟記言)』
- 김효경, 「단종의 신격화 과정과 그 의미」, 『민속학연구』5, 국립민속박물관,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