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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42 기준 최신판




총론

[1645년(인조 23)~1668년(현종 9) = 24세]. 조선 제 17대 임금인 효종(孝宗))의 딸로 공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장유(張維)의 딸로 효종의 정비(正妃)인 인선왕후(仁宣王后)이다. 부마는 동래 정씨(東萊鄭氏)동평위(東平尉)정재륜(鄭載崙)이다. 인조(仁祖)의 손녀이자, 숙종(肅宗)의 친고모이기도 하다.

출생 및 혼인 생활

숙정공주(淑靜公主)는 효종과 인선왕후의 1남 6녀 가운데 5녀로 태어났다. 당시는 큰아버지이던 소현세자(昭顯世子)과 세상을 떠나고 봉림대군(鳳林大君)이던 아버지 효종이 세자로 결정되었던 시기였으나, 아직 책봉은 되지 않았으므로 공주의 분만은 사저에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산실(産室)까지 쫓아가 문안을 하였으므로, 당시 이조판서(判書)였던 이식(李植)이 이를 한탄하기도 하였다.(『인조실록』 23년 9월 9일) 이때에 태어난 공주는 8세가 되던 1652년(효종 3) 숙정공주에 봉해졌으며, 12세가 되던 1656년(효종 7) 영의정 정태화(鄭太和)의 아들이자, 좌의정을 역임한 정치화(鄭致和)의 양아들인 정재륜과 혼인하였다.(『효종실록』 3년 12월 22일),(『효종실록』 7년 8월 29일)

이후 1622(현종 3) 숙정공주는 언니 숙안공주(淑安公主)와 함께 신천(信川)·재령(載寧)·평산(平山) 등에서 민전(民田)을 불법으로 탈취하였다는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현종실록』 3년 7월 13일) 그리고 그로부터 6년 후인 1668년(현종 9) 숙정공주는 2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현종실록』 9년 5월 5일) 이에 현종은 3일간 조시(朝市)를 정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초상에 대해서는 공주의 예가 아닌 대군(大君)의 예에 따르게 하였다.(『현종개수실록』 9년 5월 5일),(『현종개수실록』 9년 6월 20일) 그리고 3년 후인 1671년(현종 12) 거애(擧哀)를 할 때에도 몸이 좋지 않으니 참석하지 말라는 약방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현종은 거애를 하였다.(『현종개수실록』 12년 1월 9일)

한편 1680년(숙종 6) 숙정공주와 부마 정재륜의 아들 정효선(鄭孝先)이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681년(숙종 7) 정재륜은 다시 결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당시 숙종(肅宗)은 결혼 대신 특별히 후처(後妻)를 맞아 후사(後嗣)를 잇게 하였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의빈은 다시 장가들 수 없다는 법이 생기면서 정재륜은 후처를 맞을 수 없게 되었다.(『숙종실록』 7년 7월 12일),(『숙종실록』 7년 7월 26일) 그러다가 1723년(경종 3) 병이 든 정재륜은 종손(從孫) 정석오(鄭錫五)를 아들 정효선의 후사로 삼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경종은 특별히 이를 허락하였다.(『경종실록』 3년 1월 14일)

묘소와 후손

묘소는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에 있다.

숙정공주는 부마 정재륜과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다. 1남은 정효선인데 후사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났으므로, 후에 아버지 정재륜이 자신의 종손 정석오를 후사로 삼았다. 1녀는 김도연(金道淵)의 처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숙종실록보궐정오(肅宗實錄補闕正誤)』
  • 『경종실록(景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
  • 지두환, 『효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