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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를 막기 위해 관모 밑에 쓰는 방한구. | 추위를 막기 위해 관모 밑에 쓰는 방한구. |
2017년 12월 9일 (토) 20:45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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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이엄 |
한글표제 | 이엄 |
한자표제 | 耳掩 |
동의어 | 피견(披肩), 귀덮개 |
관련어 | 모이엄(毛耳掩), 양이엄(涼耳掩) |
분야 | 생활·풍속/의생활/관모 |
유형 | 의복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민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이엄(耳掩)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11년 2월 13일, 『세종실록』 14년 11월 10일, 『세종실록』 22년 1월 25일, 『세조실록』 3년 12월 9일, 『성종실록』 2년 1월 13일, 『성종실록』 3년 1월 22일 |
추위를 막기 위해 관모 밑에 쓰는 방한구.
개설
왕이 사신을 비롯하여 신하와 군인에게 지급하는 방한구로서 사모나 관모 아래 쓴다. 신분에 따라 3품 이상은 초피(貂皮), 4품 이하는 이피(狸皮)·호피(虎皮)·서피(鼠皮)로 만들어 차등을 두었으며, 겉감은 아청색(鴉靑色)으로 한다.
연원 및 변천
이엄은 초피나 모로 만들었으며 왕이 사신이나 신하에게 선물로 주었다(『세종실록』 11년 2월 13일). 대소 조회와 상참 조계를 행할 때 바람이 차가운 날에 늙고 병이 있는 신하가 추운 것을 무릅쓰고 행례하는 것을 미안하고 불편하게 생각하여, 대소 신료들이 중국의 예에 따라 이엄을 쓰되 부제학(副提學) 이상은 초피와 단자(緞子)로 만든 이엄을 쓰고, 사간(司諫) 이하 9품까지는 서피와 청초(靑綃)로 만든 이엄을 쓰라고 했다(『세종실록』 14년 11월 10일).
특히 초피는 희귀한 물건인데 초구(貂裘)이엄과 초피이엄을 다 쓰고 다니기 때문에 차등을 두었다. 이에 3품 이상은 초피를 쓰고, 4품 이하는 살쾡이나 여우·쥐 등의 가죽인 이피·호피·서피를 쓰도록 하였으며, 공상(工商)·천례(賤隷)의 것으로는 호피·이피와 잡색 모피만을 쓰도록 했다(『세종실록』 22년 1월 25일).
한편 왕이 거문고와 어울러서 노래를 잘 부른 계집종 중춘(仲春)에게 초피이엄을 주는 등 왕의 특별한 하사품이기도 했다(『세조실록』 3년 12월 9일). 성종 때에는 후원에서 활 쏘는 것을 구경하고 갑사 8인에게 호피이엄을 하사하기도 했다(『성종실록』 2년 1월 13일).
한편 이엄은 사치 품목이었으므로 서인의 남자와 부인이 초피, 청서피를 사용하는 경우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여인의 서피이엄은 금하지 않았다(『성종실록』 3년 1월 22일).
형태
이엄은 겉을 아청단자(鴉靑段子)·아청필단(鴉靑匹段)·아청초(鴉靑綃)로 싸고 안에 초피를 댄 것을 최상으로 쳤다. 초피 외에는 이피·호피·서피 등을 사용하였다.
용도
추위를 막기 위해 관모 아래 쓰는 방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