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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6일 (수) 14:33 판



족제비 따위의 털가죽.

내용

서피(鼠皮)는 함길도와 평안도의 토산으로 중국 사신들이 탐하는 물건 가운데 하나였다. 1425년(세종 7) 8월에는 매년 상납하는 수량을 정하여 함길도에는 서피 3,990벌, 평안도에는 서피 500벌을 상의원(尙衣院)에 바치도록 했다(『세종실록』 7년 8월 27일). 서피는 주로 갖옷과 이엄(耳掩)에 사용되었는데, 사모이엄(紗帽耳掩)을 만들기 위해서는 13~14장의 서피가 필요하였다.

1432년(세종 14) 11월에는 대소조회(大小朝會)와 상참조계(常參朝啓)를 행할 때 차가운 날에 늙고 병든 신하에게는 사간(司諫) 이하 9품까지 서피와 청초(靑綃)를 쓰도록 허락하였는데(『세종실록』 14년 11월 10일), 1440년(세종 22) 1월에는 신분에 따른 의복 재료를 정하면서 3품 이하의 구(裘)와 4품 이하의 이엄에는 이피(狸皮)·호피(狐皮)와 함께 서피를 사용하도록 했다(『세종실록』 22년 1월 25일). 그러나 성종대에 들어서는 사치에 의한 폐단으로 서피를 교역하는 자는 장형(杖刑) 100대와 파직하도록 하였고, 3품에 한해 서피를 사용하도록 하였다(『성종실록』 6년 7월 17일).

용례

上遣元肅 贈儼貂鼠皮一百領(『세종실록』 1년 9월 12일).

참고문헌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천공개물(天工開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