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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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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초군 |
한글표제 | 초군 |
한자표제 | 哨軍 |
관련어 | 척계광(戚繼光), 절강병법(浙江兵法), 영(營), 사(司), 초(哨), 기(旗), 대(隊) |
분야 | 정치/군사·국방/편제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노영구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초군(哨軍)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선조수정실록』 27년 12월 1일 |
조선후기 100여 명으로 편성된 편제 단위인 초(哨)를 구성하는 군사.
내용
임진왜란 중 명나라 척계광(戚繼光)의 전술 체계인 절강병법(浙江兵法)이 소개되면서 그 군사편제도 함께 도입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군의 편성도 절강병법에 따라 영(營)-사(司)-초(哨)-기(旗)-대(隊)로 재편되었다. 그중 100여 명으로 구성된 초는 이 군사편제에서 주요한 전투 편성 단위였으므로 훈련도감 등 중앙군과 속오군 등 지방군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초군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점차 지방군인 속오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용례
遣敎士于各道 訓習三手技法 置哨軍 時 京城 設訓鍊都監 募兵訓鍊 而外方 亦置哨軍 或束伍軍 毋論良民公私賤人 選壯充額 束以戚書之制 敎鍊三手 分遣御史試閱 自是軍額頗增益矣 本朝六軍之法 只抄良民着籍 給保三人 試藝而授軍職 其技則弓矢 其陣法 則用世祖大王所定陣書法 兵農不分 無事則上番京師 有事則屬鎭管 出征而已 然而賤人從母之法久行 良民日縮 軍額大耗 至是 盡用公私賤人入束伍 而戚氏之制 又與陣書異同 京軍則自官廩養 兵農已分 外軍則旣有本役 又入束伍 無給保 無廩食 被抄者怨苦 逃亡相繼 爲州縣之弊矣(『선조수정실록』 27년 12월 1일)
참고문헌
- 김우철, 『조선후기 지방군제사』, 혜안, 2001.
- 차문섭, 「속오군 연구」, 『조선시대군제연구』,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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